일본, 자위대 군사대응력 박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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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일본이 유사시 자위대와 주일미군의 원활한 군사행동에 장애가 되는 모든 법률을 일거에 뜯어고치는 '유사법제(有事法制)정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직접 무력침공을 받지 않더라도 대형테러.괴선박 영해 침범 등 위기상황이 조성됐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군사적 대응을 하는 쪽으로 법을 정비할 방침이어서 주목된다. 일본 정부는 21일 개회된 정기국회에서 유사법제 정비를 위한 모법인 '안전보장기본법'(가칭)을 만든 후 올 가을 임시국회 이후 개별법들을 일괄 정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도 자위대 군사활동 확대, 개인재산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여론이 적지 않은 데다 한국.중국 등 주변국가에서는 일본의 군사력 팽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 유사법제 정비=무력침공을 받는 등 유사시에 자위대와 주일미군이 민간소유 토지수용, 일반도로 점유 등을 통해 군대 이동과 진지 구축 같은 군사활동을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관련 법들을 개정하자는 것이 유사법제 정비의 기본취지다.

그래서 '징발법'이란 말도 나온다. 일본은 정비대상 법안을 자위대법 등 방위청 소관 법안(제1분류 법안), 도로법 등 다른 부처 소관 법안(제2분류 법안), 포로처리 등 주무부처가 명확지 않은 법안(제3분류 법안)으로 구분해 작업을 진행 중이다.

◇ 움직임=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지난해 4월 취임하면서부터 유사법제 정비에 많은 의욕을 보여 왔다.

특히 9.11 테러와 괴선박 침범 사건을 계기로 자민당 집행부와 방위청은 유사법제 정비에 한층 열을 올리고 있다. 고이즈미는 지난 18일 모든 관련 법안을 포함하고 테러에 대한 대비도 정비 대상 법안에 포함하는 쪽으로 범위를 확대해 이번 정기국회에 '안전보장기본법'을 제출하라고 내각부에 지시했다.

◇ 논란=일본의 우익세력들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유사법제 정비 등 두가지를 끈질기게 주장해 왔다.미 테러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11월 제정된 테러대책특별조치법으로 사실상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유사법제마저 정비되면 묶여 있던 자위대의 양 날개가 모두 풀리는 셈이다.

유사법제가 정비되고 나면 우익세력들은 전쟁금지를 명시한 헌법 9조를 개정하자고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개인재산 및 권리 침해, 군사대국화에 대한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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