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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만화가협 안타까운 감투싸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18일 오후 서울 남산 애니메이션센터는 만화가협회 총회로 근래 보기드물게 북적거렸다. 22대 회장선거를 위한 총회가 이전과 달랐던 점은 세가지.

첫번째는 23년만의 첫 경선이었다. 한달 걷히는 회비 70여만원으로 5백만원이 넘는 경비를 지출해야 하는 회장직을 맡으려는 사람은 그동안 거의 없었다. 그래서 추대형식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그런데 지난해 '만화의 날'이 처음 제정되면서 문화관광부는 행사지원경비로 8천4백만원을 내놓았다.

두번째는 오랜만에 투표를 한다는 소리에 참석회원도 예전의 두배가 넘는 2백여명이나 됐다. 평소 않고 총회에 잘 참석하지도 않던 원로들까지 대거 출석했다.

세번째는 그렇게 모인 이들이 평소 오손도손하던 모습 대신 원로파와 소장파로 갈려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원로파들은 현 집행부가 다른 만화단체(우리만화발전을 위한 연대모임) 임원을 겸직한데 대해 지난 연말부터 이의를 제기해왔다. 그리고 '경선'을 맞은 이날 갑자기 투표권을 요구했다.

"회비를 못내 투표권이 상실된 만화가들에게도 투표권을 줍시다."

건의는 받아들여졌다. 적지않은 만화가들이 그 자리에서 밀린 회비를 완납하고 투표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총회는 끝났다. 하지만 '난 이렇게 만화를 발전시키겠다'는 목소리 대신, 그저 자리 다툼, 감정 다툼의 모양새를 보인 총회는 돌아오는 발길을 무겁게 했다. 많은 이들이 "만화계가 하나로 뭉쳐도 될까말까인데, 굳이 서로 불화를 조성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문화관광부는 올해 5백억원을 만화를 포함한 문화콘텐츠 산업에 새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 지원금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만화를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염원이 실려있는 것이다.

지난해 작고한 김종래 화백에게 문화훈장이 추서되자 만화가들은 "이제야 불량제품 생산업자에서 문화예술인으로 격상됐다"고 자축했다. 만약 만화 그리기보다 '떡고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만화인이 있다면, 그들은 여전히 '불량제품 생산업자'라는 오명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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