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 반미주의, 왜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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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반미주의에 대해 걱정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을 배격하는 풍조가 젊은 세대와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미주의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반미주의가 문제되는 이유는 한국이 놓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필요한 나라다.

강대국 틈에서 숨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 밖의 강대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대미 동맹관계를 지지하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바로 반미주의는 이와 같은 국민적 합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염려스럽다는 것이다.

*** 한쪽만 치우친 현실 해석

그러면 반미주의자들의 주장은 어떤 것인가? 반미주의 사상의 내용은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지금은 반미주의가 좌익의 전유물처럼 돼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캐나다의 반미주의는 1775년 '미국혁명'에 반대하는 보수세력의 정치이념이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미국을 물질주의 문명으로 경멸하고 독일은 정신적 문화라고 자부했던 사고방식이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독일 반미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연세대 유영익 교수에 의하면 한국의 경우에는 19세기 중엽부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고정관념이 있었다. 첫째로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화이(華夷)양분론에 따라 미국은 중국문화권 밖에 있는 야만의 나라라는 견해가 있었고, 둘째로 미국은 영토가 광활하며 부유하고 정의로운 나라이므로 우리가 의지할만한 '문명 부강국'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셋째로는 미국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침략국가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견해가 있다. 이러한 견해는 1917년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이후 아시아의 많은 지식인들이 소련을 동경하면서 널리 퍼졌다.

그 다음 넷째로 미국은 말로는 평등을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탄압하는 사회라는 인식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미국은 황금만능주의.관능적 쾌락주의 등 도덕적 타락과 정치적 부패로 몰락할 수밖에 없는 서양문명에 속한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예의를 모르는 야만인의 나라,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해 제국주의 정책이 불가피한 나라, 말로는 평등을 내세우면서 소수민족을 차별하는 나라, 그리고 도덕적으로 타락해 결국은 몰락할 수밖에 없는 서양의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라는 선입견이 지난 1세기 반 동안 우리 민족의 대미인식을 지배해 왔다. 그밖에도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는 우리가 살았던 시대의 경험,예를 들면 6.25 전쟁, 광주사태, 통상압력 등의 경험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인식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한면만을 확대 왜곡하는 데 있다.이것은 미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친미주의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선 미국을 좀더 정확히 알아야겠다. 있는 그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나타난 우리의 대미(對美)인식은 너무 단편적이고 단순하다.

*** 비판과 포용 균형 갖춰야

그러니까 우리는 미국의 어느 한면만을 보고 '미국'그 자체에 대해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열린 사회이기 때문에 각종의 부정적 면도 환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난 결점 하나 또는 둘을 보고 미국 자체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더욱이 근거 없는 음모설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반미주의는 미국의 '음모'를 전제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음모는 설명을 입증할 증거가 없을 때 진실의 추구를 포기하는 수단이 된다.

이렇게 보면 반미주의는 불충분한 증거와 잘못된 인식을 기초로 미국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무책임한 반지성적 태도다. 따라서 반미주의는 미국에 대한 비판적 지성적 자세와는 정반대에 속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미국의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대해 균형 있고 사실에 기초한 비판적 포용의 자세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김경원 <사회과학원원장>

▶필자 약력=서울대 법과대 입학, 미국 윌리엄스대 졸업.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뉴욕대.고려대 교수. 청와대 비서실장, 주유엔대사, 주미대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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