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대학강사 문제 치유할 수 없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2001년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백80개 대학의 교원 가운데 대학강사의 숫자는 5만6천4백12명으로 전체 교원 11만3천4백61명의 49.7%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좀더 세밀히 살펴보면 교양과목의 63.5%, 전공과목의 36.5%가 강사들에 의해 이뤄진다.

대학교수제도는 기형적인 연공서열제로 돼 있다. 기형적인 지점은 바로 대학강사와 전임강사 사이에 놓여 있다.

전임강사 이상만 소위 철밥그릇을 보장하는 연공서열제도로 돼 있다. 교수임용에 관련된 각종 비리의 온상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나 소위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인 대학강사들 사이에는 강의 능력, 연구 능력, 학위 및 연수 과정 등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즉 동일한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고, 동일한 교육노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강의와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동일한 가치를 인정한다.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집필의 자격에 있어서도 대학강사들이 대학교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게재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연구논문의 숫자나 질이 특별히 더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이들이 생산해내는 강의와 연구라는 상품의 질을 대학강사와 교수라는 차이를 두지 않고 동일하게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강사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 없다.

대학강사의 강사료는 시간당 약 2만원 정도다. 결혼한 사람들, 특히 가장은 다른 소득이 없는 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게 솔직한 현실이다.

여기다 최근 들어 강사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각 대학들이 학부제를 실시해 강좌를 맡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강의를 맡고자 하고, 강의부담이 많을수록 연구시간은 줄어들게 되고, 그에 따라 강의의 질도 보장하기 어려워지는 악순환 구조도 생기게 됐다.

대학강사들은 여기다 교수들과 달리 1년 중 방학기간에 해당하는 4개월은 강사료조차 받지 못한다.

또한 사회복지와 관련해서도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법상의 사업장가입자에서 제외돼 있다. 한국 대학교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학강사 신분의 불안정이 과연 단순한 문제인가. 결단코 아니다.

이는 한국사회의 건전한 노동과 가치의 문제이며 대학교육의 정상화나 대학의 발전 및 국가의 전문인력관리와도 밀접히 연관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대학강사의 존재를 부정하고선 우리 나라의 대학교육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학강사들은 한국의 대학이란, 대학강사에 대한 착취구조 속에서 운영된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학강사 문제도 한국사회의 다른 문제들처럼 구조화돼 쉽사리 치유될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를 직시하고 노력을 시작한다면 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현실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 첫걸음으로 교육부와 대학당국은 대학강사의 교육적.사회적 역할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

현행 교육관계법을 개정해 대학 강사에게 명확한 교원신분을 갖도록 하고 보수와 처우도 개선해 제도화함으로써 최소한의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윤병태 <전국대학강사 노조위원장.영남대 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