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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점검] 거주자 우선 주차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단독주택 세입자인 이동규(32.서울 서초구 방배동)씨는 요즘 퇴근 시간이면 주차걱정에 골치가 아프다. 지난달 거주자 우선 주차배정에서 서초구 거주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탈락했기 때문이다.

장윤주(32.여.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씨는 우선 주차구획을 배정받아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4만원씩 내고 있지만 불만은 마찬가지다.

장씨는 "배정받은 공간에 거의 매일 다른 차가 주차해 있는데도 구청에선 단속을 안한다"며 "어쩔 수 없이 불법주차를 했다 딱지를 떼인 적도 있다"고 불평했다.

서울시가 주택가 이면도로의 무질서한 주차를 바로잡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 도입한 거주자 우선 주차제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골목길에 주차구획선을 그어 월 2만~4만원을 받고 주민에게 배정하는 이 제도에 대해 탈락자들은 "어디다 차를 세우란 말이냐"며 반발하고, 당첨된 사람들도 "돈을 내고도 주차를 못하기 일쑤"라며 불만이다.

◇ 현황=지난해 말 현재 서울시내 거주자 우선 주차구획은 18만8천여면. 성동.송파.동대문.서초 등 14개 자치구가 관내 모든 지역에서 우선 주차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나머지 자치구는 오는 3월까지 전면시행에 들어간다.

문제는 주택가 자가용이 1백80만여대인데 비해 주차공간은 1백26만여면에 그쳐 30% 가량 부족하다는 것.

시는 ▶주택가 공동주차장 건설▶건물 부설 주차장 야간개방▶유휴 시유지 활용 등으로 주차면적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나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가 없다.

지난해 99개소 7천5백79면을 새로 짓기로 한 주택가 공동주차장의 경우 완공된 곳은 24개소 1천2백73면뿐이다. 35개소는 공사 중이며 40개소는 주민 반발로 부지 매입이 늦어지는 바람에 공사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건물 주차장 야간개방은 시설물 손상을 우려한 건물주들 때문에 지지부진한 상태이며, 유휴 시유지 활용방안도 새로 확보될 물량이 1만여대분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시는 지난해 12월 대책회의를 열어 자동차 생산업체들에 공동주차장 건설지원을 요청했으나 업체들은 "한 두 지역이 아니라 시내 모든 지역에 주차장을 지어야 할텐데 제조업체가 어떻게 그 많은 땅을 사서 주차장 영업을 하느냐"며 반발했다.

◇ 제도 운영상 문제=탈락자들은 자치구 거주기간과 연령 등이 기준인 현재 배정원칙이 세입자 등을 위해 보다 탄력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전체 주차공간의 65%가 하루종일 차를 댈 수 있는 전일제여서 낮에 텅텅 빈 주차공간을 놔두고도 불법주차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방문차량을 위해 동네 슈퍼마켓이나 세탁소 등에서 주차쿠폰을 판매할 계획이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자 인터넷 판매제로 바꾸기로 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당초 지난해 11월 전면 실시하려던 거주자 우선 주차제를 지난 연말과 올 3월로 두 차례나 미뤘지만 일부 구청에선 또 다시 연기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성북구는 지난해 11월까지 1만1천3백12면의 구획선을 그을 예정이었지만 주민 반발이 심해 7천7백71면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구청 관계자는 "3월 전면시행은커녕 상반기 중 구획선이라도 모두 그으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 새로운 카드 '차고지 증명제'=거주자 우선 주차제로 주택가 주차문제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서울시는 1989년부터 수차례 추진됐던 차고지 증명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이 제도는 개인소유 주차장이나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건물부설 주차장 임대 등으로 미리 주차공간을 확보한 사람만이 차량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김성수(金聖洙)주차계획과장은 "주차공간은 턱없이 부족한데도 서울시내 차량은 매년 13만대씩 늘고 있다"며 "거주자 우선주차는 임시 해결책일 뿐 결국 차고지 증명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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