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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노믹스 미완의 개혁] 비대위의 재벌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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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 대재벌 총수와 면담요? 그러세요. 즉시 날짜를 잡으세요."

1998년 1월 초, 김용환 당시 비상경제대책위원회 대표는 일산 자택으로 DJ를 찾아간다.

그는 "당선자 시절부터 재벌을 압박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DJ는 그 자리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김용환의 회고.

"외국 채권단이나 노동계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재벌개혁은 당시 DJ나 내 입장에선 사활을 건 전쟁이었다. 재벌은 그냥 나둬선 체질적으로 안움직이니 5대재벌부터 스스로 뛸 수밖에 없도록 DJ가 당선자 시절부터 직접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DJ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서 1월 1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DJ는 4대재벌 총수와 조찬을 하며 첫 대면을 한다. 박태준 자민련 총재와 김용환 대표, 박지원 대변인이 배석하고, 현대 정몽구 회장, 삼성 이건희 회장, SK 최종현 회장, LG 구본무 회장이 참석했다. 대우 김우중 회장은 외국에 나가 있었다.

이날 DJ가 주문한 내용의 핵심은 총수의 사재출연이었다.

"노동계를 설득하려면 여러분이 앞장서야 하며 자기 재산을 회사에 내놓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한 DJ는 "노동계 요구대로 총수 재산을 환수하거나 노조에 경영권을 주는 건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崔회장은 "경제위기의 책임을 통감한다",李회장은 "기업개혁은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1시간30여분간 시종 무거운 분위기이던 회동이 끝날 무렵 김용환 대표는 종이 한장을 꺼내 들었다.내용을 줄줄 읽어 내린 그는 총수들에게 합의를 요구했고, 이 합의문은 다음날 비대위에서 팩스로 5대재벌에 전달된다. 합의문을 가지고 나온 총수는 없었다.

신정부와 5대재벌 총수간의 첫번째 합의문은 이렇게 작성됐다.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상호지급보증의 해소▶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핵심 역량 강화▶지배주주 및 경영진의 책임 강화-.

합의문에 적힌 이른바 기업구조조정 '5원칙'이었다.

언뜻 교과서 같은 이 5원칙이 국민의 정부 내내 재벌을 압박해 나가는 '굴레'가 되어 돌아올 줄을 이때 총수들은 알고 있었을까.

이로부터 한달도 안돼▶그룹 비서실과 기획조정실 폐지▶총수의 대표이사 등재▶은행과의 재무개선약정 체결 등 재벌 구도를 다시 짜게 하는 온갖 정책.수단들이 이날의 5원칙에서 뻗어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재벌 총수들은 당시의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용환 대표는 "꼭 항복문서를 받는 기분이었다"고 지금도 당시의 심정을 생생히 되살린다.

그 즈음 재계는 잔뜩 웅크린 채 DJ의 행보만 주시하고 있었다.'재벌=환란죄인'이란 사회분위기도 그랬지만 DJ와의 관계가 더 큰 이유였다.

"DJ는 대통령 후보 시절 몇차례나 5대재벌 총수와 면담을 요청했지만 못만났다. 97년 9월에는 김우중 회장이 '여당후보는 만나주면서 지지율 1위 후보를 안만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지만 당시 전경련 회장인 최종현 회장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선 끝내 안만났다. DJ 당선 직후 이번엔 30대그룹 기조실장이 김원길 국민회의 정책위의장을 초청했는데 金의장은 공문을 전달하러간 전경련 직원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당시 전경련 기획본부장이던 권오용(현 KTB네트워크 상무)씨는 "한마디로 재계는 전전긍긍"이었다고 기억한다.

DJ와의 회동 이틀 뒤인 15일, 이번엔 재벌 총수들끼리의 회동이 이뤄진다.

전경련 월례 회장단 회의였다. 내건 주제는 '경제전망'이었지만 실제는 대책회의였다.

5대 재벌 중엔 LG 具회장만 빠졌고 총 14명의 총수들이 모였다. 총수들이 이만큼 모인 것은 95년 이후 처음이었다.

회의는 일절 비공개, 기록자도 없이 진행됐다. 회의 직전 도청점검에선 모 방송사의 녹음기가 탁자 밑에서 발견돼 제거됐다.

대화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서약에 따라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상황은 이렇다.

최종현 회장:신문에 난 내용이 뭐냐. 왜 없던 이야기가 나오는가.

손병두 부회장:그렇지 않아도 박지원 대변인과 통화했는데 '신문 발표대로만 하라'고 했다(14일자 각 언론 보도에는 5원칙 외에 사재출연.결합재무제표작성 등의 내용이 실려 있었다).

崔회장:고금리.고임금과 강성 노조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됐는데도 왜 우리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대부분의 회장들이 '우리만 죄인 만든다'고 동조하며 분위기 격앙)

이건희 회장:외부에 비춰지는 게 중요하니 과거는 더 얘기하지 말자.앞으로 할 걸 내놓자.

崔회장:DJ가 꼭 근로자 편만 들겠다는 건 아닌 것 같다.정리해고제를 꼭 하겠다니 우리가 잘 활용만 하면 좋은 결과도 있을 거다.

김우중 회장:지금 환율로는 돌멩이를 들고 나가도 수출이 된다.대신 국내에선 큰 자동차가 일절 안팔린다.수출을 2백억달러 늘리면 수입이 3백억달러 줄어 5백억달러 흑자가 난다.이걸로 국제통화기금(IMF) 고금리 빚 갚아야 나라가 산다.

그러나 막상 5원칙에 대해선 별로 얘기가 없었다. 김우중 회장이 "큰 원칙은 합의해주고 각론에서 해결하면 된다"고 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정권의 개혁 구호와 큰 차이가 없다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그게 오판이었다는 사실을 재벌총수들이 알게 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정부 출범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66일간 비대위는 경제의 전권을 쥐고 재벌 개혁의 시동을 건다. 사상 유례 없이 들어오는 정부측과 나가는 정부측이 함께 참여한 만큼 비대위의 결정은 곧바로 법이 됐다.

뒷날 '재벌개혁 교본'으로까지 불린 5원칙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5원칙은 비대위 실무기획단에서 단 하루 만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하루짜리 작품엔 석달 뒤 금융감독위원장이 되어 재벌개혁을 진두지휘하게 되는 이헌재(李憲宰) 당시 비대위 기획단장과 젊은 관료들의 치밀한 수(手)가 담겨 있었다.

DJ에게 재벌 총수와의 회동을 건의하러 일산을 다녀온 뒤 김용환 대표는 바로 李단장을 불러 "이틀안에 기업구조조정 원칙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날 오후 李단장은 서근우를 부른다. 금융연구원에서 비대위 실무단에 파견나와 있던 서근우는 몇달 뒤 금감위 제3심의관으로 부임, 5대재벌 구조조정을 총괄하게 된다.

李단장은 "받아적으라"며 5원칙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3원칙의 내용을 술술 불러나갔다. 서근우의 회고.

"李단장은 취미가 '정책개발'인 사람이다. 평소에도 재경원 후배들에게 경제정책을 수시로 코치하곤 했다. 하루짜리라지만 5원칙이 재벌개혁의 핵심을 다 담아낸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건 5원칙이 아니라 그 뒤에 따라붙은 실천 3원칙이다."

실천 3원칙은 ①기업 스스로 한다 ②정부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한다 ③수단은 은행을 이용한다는 것이다.핵심은 ③번,은행을 통한 기업구조조정에 있었다.

다시 서근우의 회고.

"은행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李단장의 아이디어였다.그때까지 재벌개혁은 권력이 직접 칼을 들고 나서야 하는 것으로 인식돼왔다.그러나 李단장은 은행을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기업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강력한 수단이란 걸 꿰뚫고 있었다.뒤에 금감위원장이 된 李단장은 기업과 주거래은행간 재무개선약정을 맺도록 해 어떻게 은행을 부리면 재벌개혁을 할 수 있는지 실제로 보여줬다."

2월이 되자 비대위는 은행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은 행감독원은 14일 30대그룹과의 재무개선약정 체결 의무화를 공식발표한다.재벌 스스로 빚을 줄일 계획서를 내되,못지키면 대출을 회수하거나 신규 자금을 주지 않도록 했다.

이에 앞서 2월 9일.비대위는 사전 정지작업도 잊지 않았다.

李단장은 직접 30대그룹 기조실 임원들을 전경련으로 불러모았다.李단장은 "14일까지 재무약정을 위한 그룹별 구조조정안을 내라"고 다그쳤다.오전 7시30분부터 두시간 가까운 회의 동안 李단장은 한번도 웃지 않았다.

3조원 가량 환차손을 본 대한항공측이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니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하자 李단장은 "예외는 없다.내고 싶지 않으면 안내도 된다"고 응수했다. "시간을 더 달라"는 요청도 李단장은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는 말로 끊었다.

결국 14일이 되자 30대그룹은 예외없이 비대위에 구조조정안을 제출한다. 열흘 뒤인 2월 19일,이번엔 DJ가 직접 나섰다.

DJ는 63빌딩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업개혁은 은행을 통해서 하겠다"고 처음으로 공식 천명한다. 이때부터 은행은 '재벌의 금고'에서 '재벌개혁의 집도의'로 바뀐다.

*** 다음편 'DJ의 첫 경제팀-중경회와 관료들'은 내주 수요일(23일)에 이어집니다.

<특별취재팀>

팀장:김수길 경제전문기자

기자:김종수.이정재.정경민.이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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