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촌 다볕마을 "도시생활보다 행복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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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리산 자락 해발 4백50m에 위치한 경남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 다볕마을.

도시생활을 뒤로 한 채 여섯가구 20여명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귀농(歸農)마을’이다.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갑자기 늘어난 귀농자 대부분은 농촌에 적응하지 못한채 도시로 되돌아갔으나 이 곳은 성공한 귀농마을로 자리잡았다.

천왕봉부터 노고단까지 1백리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다볕마을의 아침은 고요하다.도시였다면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출근준비에 온 집안이 들썩거릴 시간이지만 이 마을엔 출근시간이 없기 때문이다.퇴근 시간도 딱히 없다.

스스로 모든 일을 계획하고 각각 맡은 농작물을 알아서 키우면 그만이다.다만 퇴비 ·죽염 ·땔감 만들기 등 미리 정해진 공동작업때는 시간에 맞춰 꼭 참여해야한다.

마을 한켠에는 아이들을 위한 트램폴린·미니풀장 등이 있다.어른들이 일하는 동안 방학중인 아이들은 마음대로 뛰어논다.하루 종일 농장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는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끊이지 않는다.

다볕마을의 역사는 97년말 외환위기 직후 15가구 30여명이 6만여평의 밤산을 사들여 이주하면서 시작됐다.이들은 밤산을 개간해 밭으로 만들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지금은 개간을 마친 2만여평에서 벼·배추 등을 재배중이다.

주민들은 또 틈틈히 만든 다슬기 청 ·무우 청 ·홍화씨 등을 판매한다.다슬기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서 직접 잡아와 3박4일 동안 우려낸다.

무우 ·홍화씨는 자연농법으로 직접 재배한다.양계장에서 얻어온 닭똥에다 풀을 베어 넣어 만든 퇴비를 주고 농약 ·비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유황오리 사육장에는 음악을 털어 줄 정도로 세심하게 배려한다.오염되지 않는 지리산 자락서 채취한 원료로 만든 제품이어서 효과를 본 소비자들의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을이 지금과 같은 평온한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밤산을 개간하기 시작하자 밤산내 계곡에서 식수를 끌어다 먹던 아랫마을 사람들이 반대시위가 이어졌다.아랫마을에서 매일 올라와 개간을 방해했지만 새로 판 지하수의 전기료를 내주는 등 숱한 노력 끝에 지금은 둘도없는 이웃사촌이 됐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귀농한 주민들 사이의 갈등.한때 20여가구 40여명까지 모여들었으나 귀농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농촌을 도피처로 삼았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다.떼돈을 벌겠다고 죽염을 대량으로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예상이 빗나가자 털고 나갔다.초기 귀농인구 14가구가 나가고 5가구가 새로 들어오는 진통을 겪었다.

곡절이 많았던 만큼 주민 구성도 다양하다.서울서 중소기업체 회계업무를 보던 정진호(43)씨는 부인과 여덟살난 아들을 데리고 4년전에 합류했다.정씨는 큰 돈 없이 귀농할 곳을 찾기 위해 전국을 2년동안 돌아다니다 이 마을에 뿌리를 내렸다.

서울의 대기업체 연구원 자리를 박차고 내려 온 양창석(47)씨는 귀농을 반대하는 가족들을 놔두고 2년전부터 혼자 와 있다.언젠가는 가족들을 설득해 데려올 참이다.

총각인 임정수(27) ·홍창호(39)씨는 부산 공사판에서 노동을 하다가 이곳을 찾아왔다.유황오리 사육담당인 임씨는 “여러사람 눈치를 봐야하는 도시생활보다 한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서울서 컴퓨터 부품회사를 하다 실패하고 들어 온 박모(41)씨는 한때 수억원대의 재력가였다.박씨는 다볕마을 홈페이지(http://www.dabyut.co.kr)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도시에서는 기업체 사장부터 밑바닥 노동자까지 천차만별의 삶을 살아왔지만 이곳에서는 평등한 농부일 뿐이다.

김윤옥(43 ·여)이장은 “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 농촌이 아니다”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함양=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 늘어나는 소신파

귀농자들의 성향에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현실 도피성 귀농이 줄고 소신파들이 늘고 있는 것.전국귀농운동본부 윤영우(尹泳遇)간사는 “IMF체제 때는 상황에 쫓겨 농촌으로 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농촌에서 땀흘리며 정직하게 살아가겠다는 확고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경제 사정이 다소 호전된 이후에도 귀농 희망자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전국귀농운동본부가 귀농 희망자들을 위해 개설하는 귀농학교 수강생은 1998년 2백7명,99년 2백57명,2000년 1백54명,지난해 1백94명 등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해 11∼12월 개설된 19기 강좌의 경우 수강생 49명 중 35명이 30대로 젊은층의 귀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추세다.

낯선 농촌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도 활발하다.여름철에 열리는 귀농학교 강좌는 4박5일 동안 아예 농촌에서 숙식을 함께 하면서 농촌생활을 체험한다.

더 깊이 있는 교육을 받고 싶으면 실상사 귀농전문학교에서 3개월간 숙식하며 배울 수 있다.이 곳에서 다양한 작목을 재배하다 보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어느새 농사일이 손에 붙는다고 한다.

현재 부산 ·대구 ·광주 ·전주 ·창원 등 7곳에 귀농학교가 해마다 한두차례 열리고 있다.02-742-4611.

*** 김윤옥 이장 부부 인터뷰

사진=송봉근 기자

*** 늘어나는 소신파

귀농자들의 성향에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현실 도피성 귀농이 줄고 소신파들이 늘고 있는 것.전국귀농운동본부 윤영우(尹泳遇)간사는 “IMF체제 때는 상황에 쫓겨 농촌으로 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농촌에서 땀흘리며 정직하게 살아가겠다는 확고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경제 사정이 다소 호전된 이후에도 귀농 희망자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전국귀농운동본부가 귀농 희망자들을 위해 개설하는 귀농학교 수강생은 1998년 2백7명,99년 2백57명,2000년 1백54명,지난해 1백94명 등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해 11∼12월 개설된 19기 강좌의 경우 수강생 49명 중 35명이 30대로 젊은층의 귀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추세다.

낯선 농촌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도 활발하다.여름철에 열리는 귀농학교 강좌는 4박5일 동안 아예 농촌에서 숙식을 함께 하면서 농촌생활을 체험한다.

더 깊이 있는 교육을 받고 싶으면 실상사 귀농전문학교에서 3개월간 숙식하며 배울 수 있다.이 곳에서 다양한 작목을 재배하다 보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어느새 농사일이 손에 붙는다고 한다.

현재 부산 ·대구 ·광주 ·전주 ·창원 등 7곳에 귀농학교가 해마다 한두차례 열리고 있다.02-742-4611.

*** 김윤옥 이장 부부 인터뷰

*** 늘어나는 소신파

귀농자들의 성향에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현실 도피성 귀농이 줄고 소신파들이 늘고 있는 것.전국귀농운동본부 윤영우(尹泳遇)간사는 “IMF체제 때는 상황에 쫓겨 농촌으로 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농촌에서 땀흘리며 정직하게 살아가겠다는 확고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경제 사정이 다소 호전된 이후에도 귀농 희망자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전국귀농운동본부가 귀농 희망자들을 위해 개설하는 귀농학교 수강생은 1998년 2백7명,99년 2백57명,2000년 1백54명,지난해 1백94명 등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해 11∼12월 개설된 19기 강좌의 경우 수강생 49명 중 35명이 30대로 젊은층의 귀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추세다.

낯선 농촌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도 활발하다.여름철에 열리는 귀농학교 강좌는 4박5일 동안 아예 농촌에서 숙식을 함께 하면서 농촌생활을 체험한다.

더 깊이 있는 교육을 받고 싶으면 실상사 귀농전문학교에서 3개월간 숙식하며 배울 수 있다.이 곳에서 다양한 작목을 재배하다 보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어느새 농사일이 손에 붙는다고 한다.

현재 부산 ·대구 ·광주 ·전주 ·창원 등 7곳에 귀농학교가 해마다 한두차례 열리고 있다.02-742-4611.

*** 김윤옥 이장 부부 인터뷰

김윤옥(47 ·여)이장과 남편 배홍균(40)씨는 다볕마을의 터줏대감이다.이들은 1997년 말 이 마을이 처음 생길 때 둥지를 튼 15가구 중 유일하게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다.金씨는 “다볕마을이 정직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전시 중심가에 2억원을 들여 차린 커피숍이 망하자 부부는 94년부터 귀농할 곳을 찾아 나섰다.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읍내에서 가까우면서 전형적인 농촌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곳을 물색하다 4년만에 발견한 곳이다.뜻을 같이한 다른 가족들과 함께 6만여평의 밤산을 2억여원에 사들였다.

金씨 부부는 “처음에 의기투합했던 마을 사람들이 돈벌이 문제로 갈등이 생겨 하나둘 떠나면서 우리만 남게돼 가슴 아프다”며 안타까워했다.

金이장은 죽염을 발명한 민족의학자 인산(仁山)김일훈(金一勳,1909 ∼ 1992)선생의 딸이다.이 마을의 주력상품인 다슬기 청 ·무우 청 ·홍화씨 등도 선친에게서 배운대로 만들지만 이런 사실을 드러내거나 홍보에 이용하지 않는다.

金씨는 “아버지의 이름을 파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우리까지 그러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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