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 제2강남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최근 들어 주택가격 급등에 대한 불안한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재건축이 활성화하면서 전세주택 물량이 부족하게 됨에 따라 임대가격이 상승하였고, 엊그제는 강남의 일부지역 아파트 가격이 자녀교육 등의 이유로 비정상적으로 상승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 여유자금 흡수 대책 절실

지난 2~3년간 지속된 부동산경기의 과열로 이제 강남의 웬만한 지역이면 아파트 시장가격이 평당 1천만원을 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지난 한해 극성스러웠던 서울의 아파트 분양열기가 올해도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일부 초호화 아파트의 경우에는 단위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소문에 민심까지 흉흉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1980년대 말 수도권 5개 신도시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이 반복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물론 이에 대해 정부가 두손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판교 개발을 추진해왔고, 그린벨트에 10만호 임대주택을 지어 서민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을 재빨리 꺼내 놓았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정책의 타이밍이다. 어떠한 정책도 적절한 시기가 있는 법이며, 시기를 놓치고 나면 그 효과는 반감되고 만다. 이번에도 주택가격이 이미 올라버린 다음에 대책을 내 놓고 있어 때늦은 감이 있다.

둘째는 정책의 지속성이다. 정부는 주택에 관한 한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갖고 흔들림 없이 일관성 있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정책이 정치권이나 환경단체에 지나치게 끌려다니며, 여론에 너무 민감하다 보니 장기적 대책보다는 단기적인 처방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언론에서 좀 잠잠해지면 다시 그 많은 대책들은 다시 수면 밑으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셋째는 정부의 정책이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택가격의 급등은 따지고 보면 모두 강남에서부터 시작됐다. 즉 전세가 되었든, 초호화 대형주택이 되었든 아파트 가격의 상승은 여윳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올려놓는 것이다.

그러나 집값이 오르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전세를 든 사람들과 주변 지역의 영세민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여유자금을 흡수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기 전에는 어떤 정책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현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의 하나는 강남에 대한 수요를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도록 강남과 유사한 여건을 갖춘 지역을 확대하는 일이다. 즉 분당과 일산이 10여년 전에 이러한 중산층 수요를 어느 정도 소화해 냈듯이, 입지여건이 좋은 곳에 제2의 강남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여건을 갖춘 곳이 바로 수도권의 그린벨트와 판교지역 뿐이다.

그린벨트지역은 주변환경이 쾌적하고,서울에서 가까워 중산층 이상의 계층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론의 비판이 두려워 이들 지역에 저밀도 공공임대주택을 짓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아무리 지가가 낮다 하더라도,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라면 과연 저밀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둘째는 대부분의 지정 대상지가 10만평 내지 30만평 정도인데, 그런 정도의 규모라면 고소득층을 위한 단지라면 모르되 저소득층을 겨냥한 주거단지로는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저소득층을 위한 단지라면 규모가 일정 수준에 이르러 도시서비스가 가능한 생활권이 구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으로 볼 때, 환경여건과 입지가 경쟁력을 갖춘 지역이 과연 저소득층을 위한 저밀도 주거지로 남아있을지 하는 점이다.

*** 판교개발 융통성 보여야

판교의 경우 어차피 중산층 이상에 상당비율의 주거지가 배려되겠지만 임대주택 부지와 벤처단지 등을 빼고 나면, 양적인 측면에서 큰 기대를 걸 수는 없을 것 같다. 거기에 저밀도개발이라는 족쇄까지 채워 놓게 되면 빛 좋은 개살구 꼴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개발밀도와 용도별 토지배분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작금의 주택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제 정부는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제2의 강남이 될 수 있는 입지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安建爀(서울대 교수.도시계획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