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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대리시험 성과급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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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찰의 수능 대리시험 수사에서 부모들의 빗나간 교육열과 젊은 세대의 물질만능주의가 부른 온갖 추태가 드러났다.

부모가 앞장서 대리시험을 제의하고, 명문대생들은 돈을 좇아 부정행위를 무감각하게 저지르는 경우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3일 현재 전국에서 경찰에 자수하거나 검거된 대리시험 사례는 서울.부산.광주.인천.울산.수원 등 전국적으로 모두 6건에 13명이다. 최근 경찰에는 일본 NHK 등 해외 언론에서 수능 부정의 다양한 수법을 취재하겠다고 문의가 오기도 했다.

◆ 못 말리는 교육열="뭉칫돈을 벌 수 있는데 과외하느니 차라리 대리시험을 봐달라." 올해 수능시험 부정사건에서 학부모가 개입한 첫 사례로 3일 적발된 부산의 손모(47)씨는 지난 6월 의대생 김모(22)씨에게 재수생 아들의 대리시험을 제의했다. 인터넷 과외 사이트를 통해 접촉한 뒤 처음 만난 자리였다. 손씨는 "점수가 좋으면 1000만원, 점수가 나빠도 500만원을 주겠다"고 하자 김씨는 그 자리에서 대리시험을 약속했다. 손씨는 지난 9월 응시원서 제출 과정에서 김씨의 사진을 원서에 직접 붙이고 랩으로 씌워 다림질까지 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 눈 감은 양심=지난 1일 대리시험 혐의로 적발된 차모(23)씨는 지난해에도 대리시험을 시도하다 경찰에 적발됐으나 올해 또다시 대리시험을 기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수도권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차씨는 지난해 한의대를 가려고 모 한의대생에게 대리시험을 의뢰했다. 현재 집행유예 상태인 차씨는 지난 8월 인터넷에서 만난 서울대 중퇴생 박모(28)씨에게 매달 용돈 30만원을 건네면서 "수능시험에서 상위 4% 이내에 들면 500만원, 1% 이내에 들면 1000만원을 주겠다"고 성과급까지 약속했다.

차씨는 "지난해 대리시험 사건으로 부모님 속을 너무 썩여드렸는데 그걸 만회해 효도할 생각에서 또 그랬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잘못된 행위에 무감각해진 사례는 또 있다. 광주에서 대리시험을 치르다 적발됐던 S여대 자퇴생 김모(23)씨는 의뢰자 주모(20)씨와 3년째 손발을 맞춰왔다. 초등학교 동창생을 위해 대리시험을 치르다 들통난 수원의 모 대학 2학년생 김모(22)씨는 "친구를 돕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 치밀한 범죄=인천에서 대리시험을 치른 뒤 자수한 여대생 두명의 수법은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었다. 두 사람은 동사무소에 주민등록증 분실신고를 한 뒤 재발급 신청을 하면 새 주민증이 발급될 때까지 사용하는 A4 용지 크기의 임시 신분증이 위조하기 쉽다는 데 착안했다. 이들은 대리시험자의 사진을 붙인 뒤 스캐너로 복사하는 방법으로 감독관의 눈을 속였다. 경찰은 대리시험자를 적발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첨단 기법까지 동원해 응시원서 사진과 주민등록증 사진을 대조하는 작업을 벌였다. 수천만원을 주고 대리시험자를 성형수술시킨다는 첩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눈.코 등을 성형수술했던 10여명의 수험생 때문에 경찰이 사진과 대조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김종문.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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