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시 꺼내는 댐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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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누구나 연초가 되면 새로운 결심을 하며 지난해보다는 더 나은 한 해가 될 것을 다짐한다. 이런 저런 까닭으로 지난해 이루지 못했던 일을 올해에는 꼭 해내겠다고 약속하거나 아니면 시대의 흐름이나 주변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준비를 하기도 한다.

*** 왕가뭄 이겨낸 팔당댐 물

이렇게 한 해를 계획하고 맞이하면서도 때때로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이는 올 한 해도 결국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같은 날들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물이 구름에서 빗방울로 떨어져 하천을 이루고 바다로 흐르다가 수증기로 증발해 다시 구름으로 바뀌는 과정을 끊임없이 순환하듯이 말이다.

내게 있어 지난 1년은 그 어느 해보다 자주 하늘을 쳐다본 한 해였고, 그만큼 하늘에 대한 소망 또한 컸던 한 해였다. 왜였을까. 그 이유가 '오랜 가뭄 때문에 하루 빨리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기우(祈雨)에의 염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면 기우(杞憂)였을까.

지난 해는 봄부터 가뭄이 심각해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 거북등처럼 갈라진 모습을 보이더니 여름에는 연중행사처럼 왔던 태풍도 없었던 한 해로 가뭄이 매우 심각했다. 지난해의 강수량은 평년의 약 4분의3 수준에 그쳐 소양강댐 45%, 안동댐 32%, 충주댐 32%, 대청댐 38%의 저수율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각 수계의 댐 유입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올 봄에는 용수공급의 어려움이 더욱 심각하게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1백년만에 찾아 온 왕가뭄이라고 자주 보도되고 있지만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가뭄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토록 혹심했다는 지난 봄의 가뭄에도 2천만 수도권 주민의 젖줄인 팔당댐의 물은 한번도 마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가뭄은 그저 먼나라, 남들의 얘기였을까.

수도권 주민이 단 나흘밖에 쓸 수 없는 물을 저장하고 있는 팔당댐이 극심한 가뭄에서도 마르지 않고 일년 내내 풍부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상류에 있는 다목적댐의 덕이다. 한강에는 두 개의 다목적 댐이 있다. 남한강의 충주댐과 북한강의 소양강댐이 바로 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두 댐에 물을 넉넉히 저장해 두었기 때문에 그토록 심한 가뭄에도 불구하고 2천만 수도권 주민들은 아무런 불편이나 고통 없이 물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진부해버린 댐 건설에 대한 논쟁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장래 물부족 예측량이나 수자원관리에 매우 불리한 한반도의 특성, 수요관리의 한계 등을 일일이 거론치 않더라도 현 상황에서 추가적인 댐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댐 건설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지만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수자원의 확보는 우리의 생존권과 삶의 질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일일 것이다. 지하수 자원도 많지 않기 때문에 지표수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우리는 이미 "댐을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어떠한 크기로, 얼마나,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냉정히 생각하고 실행해야 하는 순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수자원 개발에도 지혜를

댐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아직 댐이 없는 곳에 대규모의 댐보다는 중소규모의 댐으로, 최대한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환경친화적인 방법으로, 수몰민은 물론 댐 주변 지역 주민의 삶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하고 지원하면서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댐을 짓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을 때가 됐다.

환경생태의 변화와 사회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댐 개발론도 문제지만 수자원의 현황을 무시하는 보존론도 문제다. 앞으로 우리가 명심할 것은 개발이든 보존이든 우리 모두 환경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힘과 지혜를 모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두움이 지나고 나면 새벽을 맞고 한 해가 저물면 어김없이 새해가 찾아오는 것처럼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본질은 새로워진다는 것이다. 준비된 자들만이 이 새로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文榮一(서울시립대 교수 ·토목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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