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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만화 '비빔툰3' 작가 홍승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아이가 한둘 있는 30대 부부라면 알 거다.

이제 둘이 오붓이 앉아 비디오를 보며 키득거리는 따위의 '아름다운 시절'은 다시 오기 어렵다는 것을. 결혼하고 나서 1~2년간 유지되던 '두근거림'은 쉴 새 없이 찧고 까부는 아이 때문에 '철렁'으로 바뀐다는 것을. 크리스마스엔 캐롤 송을 들으며 커피 한 잔의 낭만을 꿈꾸지만 결국 아이 손이 가는 대로 '앗싸~'를 외치는 '이박사 메들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지난해 말 문화관광부의 '오늘의 우리 만화'(하반기)상을 받은 『비빔툰3』(문학과 지성사)은 이렇듯 젊은 부부들이 '내 얘기네!'하고 공감해 마지 않을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한 정보통과 생활미 두 부부가 아들 다운이와 딸 겨운이를 낳고 사는 오종종한 일상사에 독자들의 반응도 꽤 좋은 편이다. 이 만화 3권은 불황에도 출간 두달 만에 1만부가 팔렸다.

"제가 아이가 없거나 미혼이었다면 못 그렸을 거에요.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게 결혼이고 육아거든요." 작가 홍승우(34)씨는 만화 속 정보통처럼 새해에 다섯살이 된 아들과 17개월된 딸의 아빠다. 아내도 생활미처럼 전업 주부다.

소재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의 이야기가 됐다는 그는 "원래 가정적인 편이 아니었는데 만화 아이디어를 구하면서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밖에 없더라"며 웃었다.

『비빔툰3』은 세심한 구석까지 '고증'이 철저하다. 애들이 '으끙'(대변)을 할 때도 양변기 위에 유아용 변기를 따로 걸치는 것을 잊지 않는 식이다.

다운이가 변기 뚜껑을 올리고 바지를 벗고 조준.발사를 거쳐 물 버리는 데까지 성공하는 에피소드는 마지막에 고추가 바지에 걸리는 뜻밖의 결말로 웃음을 안겨주는데, 이것은 아내에게 '취재'한 덕을 봤다.

"한참 안 떠오를 때는 애들 엄마한테 구원을 청하죠. 그러면 동물원 우리에 있는 사자한테 고깃덩이 던져주듯이 하나씩 아이디어를 줘요. 처음에는 '프라이버시를 침해 당한다'며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는 평생 그리라며 응원해줘요. 제가 작가지만 온 가족의 공동작업인 셈이지요." 그가 아쉬운 것은 성(性)적인 소재를 많이 다뤄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족 만화로 인식이 돼서 그런지 콘돔만 나와도 당장 항의 메일이 날아와요. 앞으로 박수동.김수정 선배들처럼 유머러스하면서 공감가는 성생활도 다뤄보고 싶네요." 못다 풀어놓은 가정 생활의 속내를 올 봄이면 문학과 지성사에서 낼 『비빔툰 비하인드 스토리』로 들려줄 계획이다.

그는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대명사 격인 홍익대 만화 동아리 '네모라미'출신. 이우일.이관용 등이 모두 절친한 친구다. 93년 한 은행의 만화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그는 영향을 준 선배로 70년대의 명랑 만화가 윤승운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포부 역시 "성인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 길창덕.윤승운.신문수 이후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명랑 만화를 계승하는 것"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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