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흐려진 '공정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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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이뤄진 몇몇 정부 산하단체 인사는 현 정권의 공정인사 의지를 의심케 만든다. 지난 연말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거듭되는 구태는 머지않아 단행될 개각을 포함한 공직인사 전체에 대한 우려까지 낳게 한다.

경찰청은 지난 연말 박금성 전 서울경찰청장을 산하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이사장에 임명했다. 朴이사장은 현 정부 들어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가 2000년 말 서울경찰청장에 임명됐으나 허위학력 기재로 임명 사흘 만에 사표를 내야 했던 인물이다.

그래선지 경찰청은 이사장 임명 사실을 해가 바뀌도록 쉬쉬해왔다. 왜 이런 떳떳지 못한 일처리로 金대통령을 욕보이는가.

경우는 다르지만 노동부가 산하 근로복지공단 감사에 40대 초반의 청와대 행정관 출신을 기용한 것도 어리석기는 매한가지다.

정무.민원 비서실을 두루 거쳤느니 주장하지만 그의 능력을 따지기보다 인사 절차가 매끄럽지 못해 소란이 일어났다. 민주당 대변인의 지적처럼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고 밀어 넣으니 공단 노조가 낙하산 인사를 외치며 국민 앞에 사과하라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이 두 케이스에 공통되는 세간의 비판은 '호남편중'이다. 이 논란은 당사자의 자질 시비를 떠나 '끼리끼리 정권'이라는 말로 변질될 만큼 현 정부를 괴롭혀온 대목이다. 金대통령이 지연.학연.청탁을 배격하라고 누누이 당부하는 것도 그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도 당당한 절차를 생략한 채 출신지역 시비를 낳을 사람들을 앉혀 대통령의 공정인사 언명을 희화화(戱畵化)하니 정말 딱하기만 하다. 능력과 전문성 못지않게 정치.사회적 감성을 감안하는 신중함이 필요한 것이다. 대단치도 않은 이런 인사상 과실로 인해 대통령의 초당적 국정운영 등 다른 정치적 약속에 대한 신뢰마저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

金대통령에게는 어느 때보다 능력과 효율성 위주의 내각 구성과 공직인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러기 위한 최우선 전제가 편중인사 시비 차단과 불균형 인사의 전면적 개선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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