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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재활용, 생산자가 책임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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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환경부가 2003년 1월 시행한 생산자책임재활용(EPR)제도는 폐기물이 되는 제품을 만들거나 판매한 자가 책임지고 사용이 끝난 제품을 재활용토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선진 유럽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EPR 대상 품목은 TV.냉장고.에어컨.세탁기.컴퓨터 등 전자제품과 타이어.윤활유.형광등.종이팩.금속팩 등이고, 2006년부터 프린터.복사기.팩시밀리를 추가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 전 제품을 합한 것보다 더 큰 부피와 무게를 차지하는 자동차는 그 대상에 없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은 1997년에 방침 안을 발표하고 2000년에 발효시켰으며, 일본은 2002년에 국회 승인을 받고 내년 1월 발효시킬 예정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동차 재활용 관련 법안을 공론화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지난해 폐차된 54만대(승용차 40만대 포함)를 무게로 치면 60만t이 넘는다. 자동차의 현재 추정 재활용률이 75~80%이니 매년 12만~15만t 정도의 쓰레기가 자동차에서 발생해 땅에 묻히거나 태워진다. 프린터.복사기.팩시밀리의 2003년도 판매수량(264만대)의 무게 9만5000t보다 1.5배가량 많은 쓰레기가 자동차에서 매년 발생하고 있는데 왜 자동차는 생산자에게 재활용 책임을 지우려 하지 않는가?

자동차에 주로 쓰이는 타이어와 윤활유는 1992년부터 예치금제도를 시행했고, EPR 대상에도 포함시켜 관리해 왔는데 몸통인 자동차 자체는 무엇 때문에 계획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일까? 오존층을 파괴한다고 해 국제협약으로 사용을 규제하는 프레온 가스가 가정용 에어컨에 있으면 가전 3사가 자체 해체공장에서 수거해야 하고, 차량용 에어컨에 있으면 그냥 공중으로 날려버려도 된다는 말인가? 한 해 회수되는 폐 에어컨 수가 2만대 수준이고, 에어컨이 장착된 폐차는 그 25배인 50만대인데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 대부분 자동차 제조업체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위기 이후 올해까지 경영권의 변화가 잇따랐다. 기업별로 그런 혼란을 겪는 와중에 업계 전체의 노력을 모으기가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각 기업 내부에서도 만들어 파는 것이야 당면한 기업 생존의 문제이기에 화급하고 중요하게 취급하지만, 사용이 끝난 차량의 재활용은 아무래도 우선순위에서 끝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관련 업계에 정책을 제시하고 이끌어 나갈 정부 부처가 환경부.건설교통부.산업자원부 등으로 각기 따로 사안별로 접근함으로써 자동차재활용 정책 전반에 대한 원칙이나 체계.일정을 세우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폐차업계에 환경보존 단속만 강화하면서 자동차 재활용의 최종 책임을 시장 논리에 떠맡겨 왔다. 폐차를 가지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만큼 재활용을 알아서 하고, 그 대신에 환경오염을 시키면 벌을 줘 왔다는 말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환경보존의 기본 원칙이 되고 있는 오염자 부담 원칙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다.

이런 실정이니 폐차장 사장치고 크고 작은 범법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 같다. 매년 폐유.폐수.폐기물소각 처리 기준을 강화하며 단속에 치중했으니 수익을 내야 하는 사업자 입장에서 위법과 편법을 하지 않으면서 연구개발에 재투자하기는 불가능한 현실이 됐다. 이렇게 가다가는 일본이나 유럽의 자동차 재활용 선진업체가 우리나라에 진출했을 때 업계의 주도권을 그대로 내주기 십상이다. 10년 전이나 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게 우리 폐차업계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자동차 재활용의 주관 부서를 환경부로 통일하고 규제 위주에서 지원 중심으로 정책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환경부가 역동적으로 추진하며 좋은 결과를 맺고 있는 EPR 제도에 자동차도 포함시켜야 한다. 당장 어렵다면 EU나 일본이 80년대와 90년대에 했던 것처럼 일정을 정해 공표해야 한다. 법적 강제가 당장 이르다면 그 전에 자동차 제조업계가 공동으로 자율적인 노력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당장 자동차 전체로 EPR 제도를 적용하기 어렵다면 타이어나 윤활유에 대해 90년대 초반에 했던 것처럼 에어컨 가스.유리.시트와 같은 부분품부터 하면서 대상 영역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겠다.

남준희 좋은 차 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