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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계경제] 1. 중동전쟁, 석유의 정치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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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세계 경제가 급속하게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세계 경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때다. 주 1회 '영화를 통해' 세계경제 현안과 역사를 살펴보는 기획을 싣는다. 영화는 쉽고, 재미있게 세계 경제의 역동성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제목=아라비아의 로렌스(62년)

원제=Lawrence of Arabia

감독=데이비드 린

주연=피터 오툴,오마 샤리프,잭 호킨스

"도둑들에게도 체면이 있습니다, 정치가들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까."

이제 막 소령으로 진급한 로렌스(피터 오툴)가 하늘 같은 앨런비 장군(잭 호킨스)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실망과 분노가 심하게 뒤얽힌 표정에, 떨리는 목소리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내용을 뒤늦게 알게 된 로렌스가 직속상관에 항의하는 1918년의 상황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충분히 있을 법한 영화적 상상이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영국과 프랑스가 맺은 비밀 협정으로 '전쟁이 끝나면 양국이 터키와 중동을 나눠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아랍인들에게 이 협정은 명백한 배신행위였다. 한 해 전,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중동에서 터키를 몰아내면 나라를 세워주겠다(맥마흔 편지)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아랍인들은 약속을 믿었고 젊은 영국 장교 로렌스를 따라 목숨을 건 혈투를 벌였다.

로렌스 대위가 아랍 부대를 이끌고 '신의 기적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네푸드 사막 한 쪽을 건넌 것도 이 무렵이었다. 난공불락의 아카바만 요새 기습에 성공한 후 여세를 몰아 성지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영국은 아랍인들이 흘린 피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라를 세워주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의 종교적인 적, 유대인들에게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밸푸어 밀약.17년)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랍인들은 영국이 저지른 2중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영국이 프랑스.아랍.유대인들에게 했던 이 세가지 밀약을 역사가들은 '20세기 최대의 외교 사기 사건'이라고까지 말한다. 스러져 가는 노(老)제국의 마지막 안간힘을 이해한다 해도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너무도 심한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중동은 그 어디보다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떠올랐다. 유럽에서 보면 인도로 가는 최단 코스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세계 최대 석유 매장지로 급부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고작 등유나 기계 윤활유로만 쓰이던 석유가 내연기관 연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01년 올즈가 내연엔진을 장착한 올즈모빌을 대량 생산하기 전까지 휘발유는 거의 쓸 곳이 없었다. 휘발유를 아무 데나 버리던 정유회사들이 잦은 화재로 주민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던 시절이었다.

20세기 들어 선박용 연료 대체 문제는 선진국 정부의 최대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석유가 석탄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연료 대체는 불가피했지만 자칫 독점적 석유회사들의 가격 농간에 휘말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영국의 노련한 정치가들이 심사숙고를 거듭할 때 젊은 처칠이 결단을 내렸다. 1911년 서른 일곱의 나이로 해군장관에 임명되자마자 군함의 연료를 석유로 바꾸겠다는 의견을 냈던 것이다. 그는 석유회사 하나를 인수하면 수급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주장했고 영국 의회는 마침내 정부가 민간석유회사 BP(브리티시 페트롤리움) 주식 51% 매입을 의결했다. 전쟁이 터지기 6일 전이었다.

중동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1908년 자고로스 산맥 인근 슐레이만에서 대규모 유전이 개발된 이후다. 이때부터 중동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 지역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영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동을 장악하려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영국이 외국에 연료를 일방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국가적 존망이 달려 있는 문제였다.

자국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는 것은 적국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중동을 둘러싼 한 판 전쟁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중동에서 석유가 나오자 처칠은 "이제 중동 장악이 세계 지배의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동을 차지하면 이기고, 빼앗기면 진다는 의미였다.

'외교 사기 사건'은 기력이 쇠한 제국의 묘안이었다. 아랍 민족을 동원해 오스트리아와 손잡은 적국 터키를 몰아내고, 유대인 금융가들로부터 돈을 끌어낸 뒤, 최종적으로는 함께 전쟁을 치른 강국 프랑스와 중동을 나눠 갖는다는 속셈이었다.

영화사에서 고전 중 고전으로 평가받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이때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아카데미상을 7개나 휩쓸었고 전 세계 관객들이나 영화사에 영향력을 끼친 영화를 꼽을 때 '베스트5'안에 꼭 들어간다.

57년 전쟁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명성을 얻은 린 감독은 이 영화로 그만의 독특한 영상미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다. 인간과 대자연이 한데 어울리는, 엄청난 스펙터클을 그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의사 지바고'(65)와 '인도로 가는 길'(84)에서도 린 감독의 강점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갓 30이 된 피터 오툴의 신들린 연기가 없었다면 영화는 반쪽의 재미를 잃었을 것이다. 여성보다 섬세한 외모와 하얀 피부, 신경질적으로 떨리는 음성, 뭔가에 씐 듯 초점 없는 눈동자…. 그의 연기는 당시 언론이 묘사했던 로렌스와 큰 차이가 없다.

영화는 다마스쿠스 점령 후 로렌스가 아랍인들과 의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역사는 그 이후를 더 중시한다. 1919년 영국 신문은 베르사유 강화 회의에서 아랍 복장을 휘날리며 아랍 국가 건설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로렌스를 주목했다. 이때 붙은 제목이 '로렌스의 반란'이었다. 영국은 그를 달래기 위해 훈장까지 내렸지만 로렌스는 그마저 거부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은 '전쟁의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미다. 빈 라덴은 TV에 등장해 다시 한 번 무슬림들의 성전을 촉구했다. 증오와 복수의 연속이다.

지난 해 9.11 테러 직후 아랍의 미국에 대한 증오의 기원을 찾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로 여긴다.

하지만 그 뿌리는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 때 뿌린 씨앗에서 자라났다. 아랍인들에게 미국은 영국의 뒤를 이은 서구의 대표 주자일 뿐이다. 80년 이상이나 자란 증오의 뿌리다.

이재광 기자(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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