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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덮은 그림 티셔츠 2010장, 130국 아이들 손에서 본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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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5일 오전 9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면 티셔츠 2010장이 회의장 천장을 화려하게 덮었다. 2010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가 개막 무대다. 서로 다른 문양과 색채의 티셔츠 2010장은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력의 상징이다. 향후 예술교육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무지개 색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일곱 빛깔에 대한 예술적 도전이다. 사람들 사이에 ‘진실’로 여겨지는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일이기도 하다. (본지 5월 22일자 23면 참고)

개막 무대에서 어린 아이 20여명은 발 구르며 춤을 췄다. 발 밑에는 알파벳이 있었다. 3D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알파벳 여러 개가 발을 구를 때마다 부숴지고 튀어 올랐다. 이를 조합하면 ‘tear(눈물)’ ‘smile(웃음)’라는 단어가 됐고, 무대 옆 화면에서는 ‘웃음이 눈물보다 열 배 많은 세상’이라는 문구가 흘렀다. 포털 사이트 구글에 두 단어를 넣었을 때의 검색 결과를 비교한 것이다. 아이들은 ‘떴다 떴다 비행기’ 가락에 ‘떴다 떴다 무지개’를 부르며 뛰어다녔고, 아이들이 춤추기를 마친 후 옷을 한 겹 벗자 화사한 무지개가 그려진 티셔츠가 나왔다. 아이들의 희망적 몸짓에 전세계에서 온 2000여명의 예술 교육 관계자들이 환호와 탄성을 질렀다.

아이티 지진과 아이의 눈물을 한국의 가야금 연주자들이 위로했다. 고통의 눈물을 희망으로 바꾸는 다양성·상상력을 표현하는 공연이었다. 2010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는 이처럼 예술과 문화 교육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무대다. [뉴시스]

이날 개막 공연은 지진의 소음으로 시작했다. 유리창이 깨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아이티 지진 현장이 3D 홀로그램으로 상영됐다. 25분 길이의 공연은 문명의 폐허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상상력과 희망으로 끝났다.

그 사이에는 영혼을 기리는 진혼과 14대의 가야금 연주가 있었다. 파괴된 생명·문명을 되살리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이 나와 비발디 ‘사계’를 연주했고, 국악인 황병기·이생강·안숙선씨의 음악이 흘렀다. 음악·몸짓에 따라 3D로 제작된 물고기·새·꽃이 헤엄치고 날아다니고, 피었다 졌다. 반 고흐의 그림인 ‘구두’안에서 색색의 새가 나와 날아다녔고 모네의 ‘수련’에서는 물고기가 살아나왔다.

개막 공연을 총 연출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한국의 힘’과 ‘티셔츠 네트워크’가 키워드”라고 말했다. “고흐의 그림 등 서양 문화가 한국에 들어오면 새·물고기·꽃이라는 생명을 낳는다. 또 붉은 악마에서 볼 수 있듯 몸과 몸으로 이어지는 티셔츠의 아날로그적 생명력이 디지털(3D 홀로그램)과 결합되는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세대인 아이들에게 생명·아날로그라는 소프트웨어를 일깨워주는 것이 이번 대회의 주제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제작했던 ‘디지로그 사물놀이’ 공연에 어린이와 서양의 그림 등을 더해 업그레이드 했다.

2010장의 티셔츠에 들어간 그림은 이번에 참가한 130개 나라 어린이들이 그려 보내왔다. 나흘 동안 대회 현장에서 판매하고, 수익금은 아이티 구호에 쓰인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창조적 상상력을 예술교육에서 찾아보려는 각국 정책 결정자와 교육 관계자들은 행사 마지막 날인 28일 ‘서울 아젠다’를 발표할 예정이다. 2006년 포르투갈 리스본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행사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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