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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사는 노인 60명에 잃어버린 생일상 차려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내 평생 생일상을 받아보긴 처음이야."

올해 91세인 황혜란 할머니는 깊이 주름진 얼굴에 연신 눈물을 글썽거렸다. 결혼 직후 홀로 돼 70년 넘게 혼자 살아왔지만 지난해까지는 생일 대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1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3동의 한 식당에서는 조촐하지만 특별한 생일 잔치가 열렸다.

이날 잔치의 주인공은 모두 60명.그런데 이날이 진짜 생일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릉3동사무소에서 동네에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들에게 한꺼번에 '잃어버린 생일'을 찾아주고자 행사를 준비했다.

동사무소 사회복지 담당인 손춘익(孫椿翼.28)씨는 "관내에 혼자 사는 노인이 3백가구쯤 된다"며 "한끼 식사 대접보다 이웃과 자주 접촉하도록 함으로써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중요해 생일잔치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정릉3동 J식당 주인 조모(58)씨도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 장소와 함께 생일상 음식 일체를 제공했다.

조씨는 "이제서야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부끄럽다"며 가게 상호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축 생신'이라고 쓴 앞자리에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케이크를 자르자 동네 어린이집에서 온 20명의 어린이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귀여운 노래와 무용을 선사했다. 15명의 동사무소 직원들은 넉달 동안 모은 상조회비로 내복을 선물했다.

김수형(78)할아버지는 "생일날 손자들 재롱을 본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이제서야 알겠다"며 기뻐했다.

정릉3동사무소의 '노인 돌보기'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김석진(金錫珍)동장은 "5년 전부터 요구르트 등을 배달하는 아줌마를 통해 혼자 사는 노인들의 안부와 건강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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