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누가 내 치즈를…'의 틈새를 읽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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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올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진명)로 집계됐다. 지난해 3월 번역된 이래 거의 2년간 초강세의 인기를 누리며 밀리언 셀러로 기록됐다.

이 책이 잘 팔리고 많이 읽힌 이유는 무엇일까. 1시간이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1백쪽 분량의 간결한 글에 쪽마다 삽화를 넣어 책 읽기의 부담도 주지 않으면서 '변해야 산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강력하게 주입시키는 이 책의 형식과 내용상 특징을 먼저 꼽아야 할 것이다. 짧은 시간 '변화'라는 최면에 걸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독자도 있다.

하지만 폭발적 인기 뒤엔 출판 외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들이 사원 재교육용 교재로 대량 구입했으며, 출판사측도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는 책과 기업이 만나 출판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이 책을 선호했는가. 당연히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적.기업적 대세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먼저 시작된 인기몰이는 올해 중반 들어서는 개인 독자들의 자발적 선택으로도 이어졌고, 이후 부동의 베스트셀러 1위를 고수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실제로도 번역되기 전 국내 여러 출판사가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 책이 변화의 메시지만 주입할 뿐, 방향의 제시 등 내용이 빈약하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빈약한 '틈새'를 노린 패러디물이 여럿 출간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는 새해에는 이 책에서 강령으로 내건 '무조건 변화'라는 구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라는 구체적 성찰로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기실 지난 20세기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면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다.

오히려 너무도 급격하게 변화의 물결에 휩싸인 후유증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대상황에 따른 '변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방향을 잘못 잡았을 때, 오히려 부작용을 치료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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