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를 경계하는 우리 사회의 목소리는 10월부터 처음 국내 지상파 방송을 타기 시작한 콘돔 공익광고에서도 들을 수 있다. '한국에서 매일 1.7명씩 발생한다'는 구체적 숫값이 '우리나라도 더 이상 에이즈의 안전지대가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뒷받침했다. 검은 색안경의 남녀가 첩보작전 벌이듯 콘돔, 아니 애필을 주고 받는 모습은 여전히 성과 관련한 얘기는 숨어서 해야 한다는 통념 또한 드러내고 있다. 전 국민이 보는 텔레비전에 나와서 떠들 때일지라도 성 문제는 남볼썽이 없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을 역으로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에이즈는 결핵과 암에 이어 인류가 부닥친 불치병의 대명사다. 결핵이 사형선고와 같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사망률 높은 에이즈도 치료 방법이 개발 중인 질병일 뿐이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를 바라보는 사람들 눈길은 못 볼 것을 본 듯 차가운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병에서 오는 아픔보다 편견과 낙인으로 받는 고통이 더 크다고 호소한다. '암적 존재'라는 표현이 이제는 '에이즈 같은 존재'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문화비평가 수전 손택은 1988년에 이미 은유로서의 질병을 파헤친 역저 '에이즈와 그 은유'에서 "이 사회에는 악과 동일시될 수 있고 그 희생자들에게 비난을 퍼부을 수 있는 질병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고 썼다. 매독이 영국인에게는 '프랑스 발진', 프랑스인에게는 '독일 질병', 일본인에게는 '중국 질병'이었듯 에이즈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21세기에 인종을 차별하고 성적 소수자들을 괴롭히는 대표 질병이 되고 있다.
유엔이 12월 1일을 '세계 에이즈의 날'로 정한 바탕에는 인간 종(種)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에 함께 대처하자는 권유에 더해 이성애자만이 평등한 오늘을 돌아보자는 권고가 담겼다. 콘돔을 애필로 바꿔 부르거나 에이즈를 범죄 영화의 한 대목으로 만드는 따위 은유를 벗어나는 데서 한국 사회의 에이즈는 치료가 가능해진다.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