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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는 섬유 예술 정수,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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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10면

22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파크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에서 열리는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이하 SAIC) 졸업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명예박사학위를 받게 된 이성순(67) 소마미술관 명예관장의 소감은 “스트레스가 심하다”였다. “처음엔 어리벙벙하다가 기쁘기도 했죠. 그런데 점점 마음이 무거워지는 거예요. 저와 함께 명예박사를 받는 엘즈워스 켈리(Ellsworth Kelly·87)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조각가이자 화가거든요. 그의 미니멀하고 심플한 세계에 저도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보다 꼭 스무 살이 많은데, 20년 뒤에는 그보다 멋진 작가가 되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네요.”

시카고예술대학 한국인 첫 명예박사 받은 이성순 소마미술관 명예관장

1866년 설립된 SAIC는 미국 미술대학 중 최고 명문으로 꼽힌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전미 대학원 순위 조사에서 1994년부터 2007년까지 계속 1위를 차지했다고 SAIC 한국동문회는 전한다. 월트 디즈니, 오손 웰스, 조지아 오키프, 제프 쿤스가 이 학교 출신이다. 홍상수 감독도 동문이다. 섬유예술가인 이 관장은 이 학교를 78년에 졸업했다. 졸업하던 해 시카고에서 열린 제1회 외국인 학생전에서 최우수상도 받았다. 65년 이화여대 미대와 67년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결혼, 남편과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훌쩍 유학을 떠나 공부와 작업에만 매진한 덕이다.

“쉽지 않았죠. 하지만 미국문화원에서 일하던 남편(김환수 미 문화원 문화담당고문·76)의 격려가 큰 힘이 됐어요. 정일형 박사님의 외조를 받은 이태영 선생님을 떠올리며 이 대학 최초의 한국인 유학생으로서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시엔 저와 이민 온 2명이 전부였는데 2010년 현재 한국 유학생은 350명에 달합니다. 한국학생 담당처장까지 생겼을 정도니까요. 제 딸도 SAIC에서 도예를 공부한 동문입니다.”
92년 SAIC 한국동문회장으로 추대된 그는 외환위기 때는 장학기금 마련 전시회를 열어 SAIC 한국 유학생을 지원하는가 하면, 2000년에는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SAIC에 머물며 한국과 미국의 섬유예술을 연구하는 등 SAIC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그는 어릴 적부터 바느질하는 것을 좋아했다. 다리미질도 잘했다. 재봉틀 만지는 데도 재주가 있었다. 서울 부암동 그의 연구실 한쪽에는 할머니, 시할머니, 사돈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각양각색의 다리미 8개와 지금도 돌아가는 독일제 ‘SINGER’ 미싱이 여전히 그의 작품 활동을 곁에서 돕고 있다.

“금속, 도자기 다 해봤는데, 섬유가 제 말을 제일 잘 들을 줄 알았죠. 결국 제일 안 듣는 걸로 판명 났지만.(웃음) 색감이 좀 탁월한 편이라 염색의 깊은 맛에 한동안 빠져 지냈어요. 83년 한국섬유미술가회를 발족하고 섬유예술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이 뭘까 궁리해 왔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담긴 보자기의 아름다움을 외국에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그는 2008년 이화여대 교수로 정년퇴임하고 2009년부터는 소마미술관 명예관장으로서 새 삶을 살고 있다.
“소마라는 말은 서울올림픽뮤지엄오브아트(Seoul Olympic Museum of Art)의 약자입니다. 올림픽공원 조각공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졌죠. 3만여 평에 달하는 공원에 한국의 백남준과 문신을 비롯해 루이스 부르주아(미국), 솔 르윗(미국), 세자르(프랑스), 마우로 스타치올리(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 219점이 있는데, 이 좋은 걸 우리만 잘 몰라요. 외국에서는 어떻게 이런 작가의 이런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느냐고 경탄을 하거든요.”

소마미술관에서 6월 6일까지 열리는 아시아 아트 어워드 포럼(Asian Art Award Forum) 전시에 이어 다음 달 키스 해링(Keith Haring) 전시회(6월 17일~9월 5일)도 꼭 보러 오라던 이 관장이 문득 중얼거렸다. “아, 퇴임하고 좀 쉬려고 했더니…미국 다녀와서 저도 제 전시회 준비를 시작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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