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길어지면 세계경제 펀더멘털 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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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유럽 재정위기로 촉발된 금융시장의 불안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19일 증시가 한때 1600선대까지 급락했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유로화 하락과 유럽의 헤지펀드 규제 움직임이다. 하지만 유로화는 별반 새로울 게 없는 문제고, 헤지펀드도 한국 시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게 증시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그러자 시장이 근본적인 위험을 인식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슬금슬금 나온다. 바로 세계 경기 둔화다. 그리스 사태 같은 돌발 악재처럼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증시가 길고 지루한 조정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경기 선행지수가 1월부터 꺾였지만 미국 등 선진국 경기가 상승세를 보이면서 우리 증시는 큰 조정을 거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미국도 5~6월 경기가 고점을 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대두한 데다 유럽에서 재정 문제가 불거지면서, 저금리와 재정 확대라는 경기를 끌어오던 두 축이 무너지고 있는 것도 시장이 불안을 느끼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경기에 민감한 원유·구리 등 산업용 원자재 값의 급락세는 좋지 않은 조짐이란 분석이다. 임동민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상품값의 급락과 함께 미국 증시의 회복이 더딘 것은 시장이 하반기 경기 둔화 위험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럽 재정위기로 중국의 성장률에도 타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의 전체 수출 중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로 아시아 지역 다음으로 많다.

금융위기 이후 시장을 떠받쳐 온 국제 공조에도 이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EU 의회의 헤지펀드 규제안 승인, 독일의 공매도 금지 등은 미국 주도로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던 공조체제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달 들어 외국인의 매매 성향도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그간 집중적으로 사들이던 정보기술(IT)·자동차 같은 경기 민감주들을 쏟아내는 대신 경기에 덜 민감한 이른바 ‘방어주’를 사들이고 있다. 삼성전자·하이닉스·현대차는 팔고, KT&G·아모레퍼시픽·롯데쇼핑 등 내수주를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세계 경제의 펀더멘털을 걱정하기는 이르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악재에 민감해진 시장이 과잉 반응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유럽 위기를 해소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사실이지만 세계 경기의 후퇴를 초래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유럽 경제권의 특성상 역내 교역 비중이 큰 데다 전체 유럽으로 보면 경상수지도 균형을 보이고 있는 등 외부로의 파급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대우증권 김학균 투자전략팀장도 “경기 둔화로 기업 이익이 늘어나는 속도가 줄 수 있지만 한국 기업 이익의 절대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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