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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IT·과학기술·지적재산 정책 통합…신성장 전략에 ‘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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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출범 8개월째 지지율 20% 전후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일본 하토야마 정권이 기사회생을 위한 승부수로 6월 중 신성장전략을 내놓을 참이다. 총리실이 지난해 12월 말 발표한 신성장전략의 기본방향을 반년 가까이 다져온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그 모습이 거의 드러났다. 신 성장전략은 디플레이션 타개와 균형 있는 성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 전략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일본 주요 기업들의 업적이 크게 호전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예컨대 도요타·혼다를 비롯한 자동차 10개사가 2010년 3월 결산에서 모두 영업흑자를 기록했고, 히타치와 파나소닉을 중심으로 한 전기·전자 8개사도 전부 영업흑자를 보였다. 부품·소재 업체와 공작기계 업체들도 같은 양상이다. 기업들은 내년 전망을 더욱 밝게 보고 있다. 이러한 업적 호전이 정부 정책에 뒷심이 되면서 그 실현성을 높이고 있다.

둘째는 특히 세계 자동차·전자· 조선 시장은 물론 인프라 시장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에 대한 경계감이 정책 추진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재계·언론·정부가 한목소리로 연일 한국 경계론을 외치고 있다.


◆정부와 재계의 총출동=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최근 기업금융원활화 지원이라는 특이한 조치를 통해 기업의 금융상품을 매입하거나 기업의 해외진출에 따르는 리스크를 줄여주는 자금 지원책을 내놓았다. 이 제도의 핵심은 환경 및 에너지, 관광, 새로운 연구개발 등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에 돈이 빨리 돌도록 올여름부터 상환까지 6개월~1년간 연 0.1%의 초저금리로 대출해주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특정 분야에 대출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제도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경제산업성(한국의 지식경제부에 해당)은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침으로서 ‘산업구조 비전’을 마련, 법인세를 국제적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일본 법인세율은 40%로 구미(歐美)·아시아와 10~15%포인트 차이가 있다. 국내외 기업을 일본 내로 끌어 잡아두기 위한 방편이다. 이에 따른 세수 부족을 소비세 인상으로 커버한다는 논의가 무성하다. 경제협력협정(EPA) 교섭과 원전·철도·수도 등의 인프라 수출 추진, 기업 인수합병(M&A)을 쉽게 하기 위한 환경정비와 인재육성을 담았다. 이러한 조치들은 6월에 발표할 신성장전략의 핵심 내용이 될 전망이다. 한편 지난해 7월 경제위기로 금융기관의 자금공급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가운데 기술력을 가진 벤처기업을 위해 만든 관민 출자펀드인 산업혁신기구가 이번에는 도시바·미쓰비시상사 등 대기업과 손잡고 원전·수도 사업 등 해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의 인프라와 소비를 잡아라=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시아의 명목GDP(국내총생산)는 2009년 14.5조 달러로 유럽연합(EU)·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까지 확대됐고, 2015년에는 23.3조 달러로 신장될 전망이다. 경제성장을 가속시키는 도로·수도·원전·차세대 초고속통신망 등 많은 인프라 정비가 아시아 전역에서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이들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수요는 향후 10년간 약 8조 달러에 이른다. 이는 일본 국가예산의 약 8년분에 해당한다. 게다가 중간소득층(세대 가처분소득이 5000~3만5000달러)의 비율이 매년 높아져 현재 8억80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 시장을 겨냥해 아시아 블루펀드 상품을 개발한 미즈호증권을 필두로 금융·증권사들의 진출이 강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소위 아시아를 키워서 돈 번다는 ‘아시아 소득 배증계획’을 추진 중이다. 일본정책투자은행·국제협력기구(JICA)가 앞장서고 기업이 뒤따르는 방식이다. 메콩강 개발프로젝트, 인도와의 고속도로 및 원자력 협력, 베트남과 중국의 국경지역에서 인도를 통과하는 이른바 ‘북위 23도 경제대역 개발’ 등 전방위적인 공략이다. 미쓰비시상사·미쓰이물산 일본 6대 종합상사는 내년 3월 결산까지 과거 최대인 2조5000억 엔(약 30조원)을 아시아 등 신흥 개도국의 자원 및 인프라 정비에 투자할 계획이다.

◆산업·과학기술정책을 융합=하토야마 정권의 성패를 좌우하는 정책결정 과정의 양 축이 국가전략실과 행정쇄신회의다. 신성장전략은 국가전략실에서 짜고 이에 필요한 기구와 예산은 행정쇄신회의가 맡고 있다. 특히 행정쇄신회의는 정부와 관련기구의 사업예산 분석을 통해 낭비예산을 줄이는 동시에 조직 개편과 역할 재조정을 하는 중이다. ‘쇄신 없이 투자 없다’는 정책철학이 과학기술 분야에도 성역 없이 적용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곧 종합과학기술회의(한국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해당)와 총리실 산하의 지적재산전략추진본부, IT(정보기술)전략본부를 통합해 ‘국가과학기술전략회의’를 출범할 계획이다. 산업정책과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 경제위기 후의 산업패러다임 전환을 바꿀 양대 이노베이션(그린 이노베이션과 라이프 이노베이션)을 실행하려면 범부처적으로 힘을 쓸 수 있는 강력한 기구가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현재 기초연구와 빅 사이언스를 담당하는 문부과학성, 응용개발 연구와 산업화를 담당하는 산업경제성 산하의 연구기관(독립 행정법인)들의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곽재원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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