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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까불지마' 로 감독 데뷔 오지명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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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감독으로 데뷔한 오지명씨가 영화 ‘까불지마’ 포스터를 가리키고 있다. 아래 사진은 1971년작 ‘사나이 현주소’ 포스터. 가운데가 오씨다. 허장강.박노식.장동휘.김지미.최불암씨 등 ‘왕년의 스타’도 보인다.

오지명(65)씨는 웬만해선 막을 수 없다. 표정 하나, 말 한 마디가 코미디다. 요즘에야 '시트콤의 황제'로 추앙받고 있지만 1960~70년대에는 뛰어난 액션 배우였다. 당시 출연작만 150여편. '주먹'으로 스크린을 휩쓸었던 그가 '웃음 제조기'로 브라운관을 사로잡은 건 80년대부터다. 그가 다음달 3일 개봉하는 '까불지마'에서 감독.주연.각본 1인 3역을 했다. 40년 연기인생에서 처음으로 잡은 메가폰. 최불암.노주현씨와 함께 "노병은 죽지 않는다"를 입증했다.

'까불지마'는 건달 3인방의 무용담. 원수의 딸을 보호하는 보디가드가 된 개떡(오지명).벽돌(최불암).삼복(노주현)이 조폭에 맞서 한바탕 액션을 펼친다. 영화적 새로움은 없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노배우들'의 열정이 돋보인다. 단순.무식한 개떡, 의리에 죽고 사는 벽돌, 잔머리만 굴리는 삼복의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오씨는 말을 돌리거나 꾸미지 않는다. 장작을 패듯 툭툭 뱉는다. 그럼에도 세월에 단련된 내공이 만만찮다.

-왜 갑자기 감독인가.

"계획이 없었다. 하다 보니 그랬다. 여기저기 연출을 알아봤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제작사에서 강하게 밀었다."

-해 보니 어떤가.

"건설현장 소장 같았다. '늙은 놈'이 감독한다니까 텃세 비슷한 게 있었다. 사흘 정도 지는 척하다 나흘째부터 엄하게 '조졌다'. 다행히 영화가 거지 같지 않다."

-5년 전 영화진흥위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됐다.

"그렇다. 대상을 받았다. 감독이 되려고 했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영화로 만들지 못했다."

-꿈을 이룬 셈이다.

"꿈은 무슨 꿈? 뭐 그리 감독이 대단하다고. 내 마음대로 코미디 한번 해봤다."

-많이 망가졌다. 호나우두 머리(앞쪽 머리칼만 짧게 남김)를 하고, 학생들에게 '삥'(돈)도 뜯는다.

"오해다. 일자무식 개떡을 드러냈을 뿐이다. 리얼리티에 충실했다. 배우들도 코미디를 하면서 '망가졌는데 예쁘게 봐주세요'라고 하는데, 말도 안 된다."

-당신이 생각하는 코미디는.

"코미디의 생명은 상황과 캐릭터다. 어차피 배우는 한계가 있다. 흔히 변신, 변신 하는 데 다 껍데기가 약간 변한 것이다. 코미디는 감독이 만드는 것이다."

-액션.코미디.드라마가 뒤섞였는데.

"완벽한 코미디를 계획했다. 임유진.김정훈 등 젊은 애들이 들어오면서 책(시나리오)을 고쳤다. 영화 크레디트(출연.제작진 소개)에도 애들을 먼저 올렸다. 기회가 되면 벌렁 자빠지는 코미디를 하고 싶다."

-제목이 눈길을 끈다.

"까불며 살아온 나에 대한 반성이다. 겸손하게 살자는 뜻이다. 사실 배우는 자본주의의 꽃이요, 대표적 속물이다. 세상에 좋은 일을 한 게 없다."

-'과거청산'을 다룬 토론 장면이 나온다. 주제도 신.구세대의 화해다.

"늙은 놈도, 젊은 놈도 조화를 이루며 살자는 거다. 투표할 자격이 없어도 다독여야 한다. '세포가 낡았다'는 건 이해하지만 '세포가 다르다'는 건 동의 못 한다."

-언제부터 코미디를 했나.

"79년 김수현씨의 '엄마 아빠 좋아'가 처음이다. 지금의 시트콤 비슷한 홈드라마였는데 공전의 히트를 쳤다. MBC 전직원이 나서서 말렸었다. 김수현씨가 얼마나 독한가. 덕분에 그해 연기대상을 받았다."

-적응이 쉽지 않았을 텐데.

"이것(주먹을 내보이며)만 해서 질렸을 때다. 이후 '오박사네 사람들''오경장''순풍 산부인과'를 직접 만들며 오늘까지 왔다. 배우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왕년에 '한주먹' 하지 않았나.

"중3 때 6.25를 피해 대구에 갔는데 서울에서 왔다고 많이 맞았다. 이후 사투리를 완벽하게 익히고 대구상고에 들어가 '짱'이 됐다. 2년간 놀다가 피나게 공부해 대입 준비를 했다. 서울 상대에 두 번 떨어져 성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못 간 게 자존심 상해 공부를 멀리하다가 연극에 빠졌다. 당시 박정자.사미자씨도 내 팬이었다."

글.사진 =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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