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방송3사 디지털전환 재원 싸고 격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KBS.MBC.SBS 등 지상파 TV의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방송사가 방송광고를 늘릴 움직임을 보이자 학계.시민단체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2010년까지 약 2조원이 필요하다며 방송광고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정부와 방송위원회는 공식적으로는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론 현재의 방송광고 제도를 바꿔 방송사들의 재원마련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학계와 시민단체는 말이 안된다는 반응이다. 방송사들이 그동안 재원마련을 소홀히 하다가 뒤늦게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방송위 산하 방송정책기획위원회는 최근 종합보고서에서 민영방송에 한해 광고 횟수.시간 등을 정해 중간 광고를 조건부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문화관광부도 광고주들이 방송광고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온 만큼 개선책으로 '광고 총량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방송 광고시간이 현재 프로그램 별로 10% 이내로 돼 있는 것을 하루 전체의 10% 이내로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광고의 총량(시간)은 같지만 광고주들이 선호하는 저녁시간대의 광고는 늘어나고 그외 시간대의 광고는 줄어들게 된다.

결국 방송사는 광고 수입을 늘릴 수 있고 광고주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시간대와 프로그램에 광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허행량(許倖亮.매체경제학) 세종대 교수는 "정부가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결정한 뒤 수년간 방송사들은 재원마련에 신경쓰지 않고 케이블.위성방송 진출이나 조직 확대 등에 투자하는 등 방만한 경영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간 광고나 광고 총량제가 방송사와 광고주들의 입맛에는 맞겠지만 늘어나는 광고비만큼 국민의 간접 부담이 커진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위성방송의 한 관계자는 "지상파 3사가 케이블.위성방송에 진출해 많게는 수백억원씩 투자한 스포츠.드라마 분야는 3~5년이 지나야 이익을 낼 수 있다"며 "지상파TV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케이블.위성방송에 판매하는 것이 케이블.위성방송에 진출하는 것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한 방송계 인사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매년 많은 이익을 내고도 지금 와서 돈이 없다고 하는 것은 디지털 전환 준비를 제대로 안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 관계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이들은 "IMF 위기로 디지털 방송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2005년 전국방송을 앞두고 디지털 장비 교체에 필요한 비용을 빼고 송출.중계시설 등을 바꾸는 데만 6천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국내외 디지털 방송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정부가 방송사의 재정 부담을 감안해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양신(車亮信)정보통신부 방송위성과장은 "경쟁 상대국들은 내년에 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을 마무리한다. 디지털 TV가 국내 관련 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크므로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일정을 연기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관건은 이들 방송사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20년 넘게 2천5백원으로 묶인 KBS의 수신료(시청료)를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KBS가 투명한 경영과 디지털 방송에 적합한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2TV의 광고를 점차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년(尹錫年) 광주대 신방과 교수는 "시청자 부담을 감안해 KBS의 시청료를 매년 1천원씩 몇년간 올려 1,2TV의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 2TV의 광고는 MBC.SBS와 지역 방송사 등에 넘기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KBS가 시청료와 광고비를 모두 챙기는 현재 구조로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민희(崔敏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중간 광고 등의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프로그램의 질을 고민하지 않고 더 많은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송사들의 체질과 무관하지 않다. KBS가 공공성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시청자들을 설득해 시청료를 인상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기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