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틀 바꿀 정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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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 조세형(趙世衡)쇄신특위 위원장은 29일 대의원들을 체육관에 모아놓고 대통령 후보를 뽑는 일은 더 이상 민주당에선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 정당사에 획기적인 변화로 기록될 전망이다.

趙위원장은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결정과정에 국민의사가 반영되고 국민들이 참여하는 방법을 찾겠다"며 미국의 예비선거 제도를 제시했다. 또 "전국구(비례대표) 후보를 독일처럼 대의원 투표로 결정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대의원들이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면 말썽많던 '돈 공천, 밀실공천'시비는 원천봉쇄된다. 공천권을 바탕으로 한 총재의 제왕적 권한도 축소된다. 예비선거 제도가 도입되면 '대의원 매수'니, '민심과 당심(黨心)의 괴리'라는 소리도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이같은 변신을 모색하는 이유는 그만큼 당 안팎의 상황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들은 "등 돌린 민심을 끌어오고 한나라당과 차별화하려면 기존 정당틀을 완전히 뒤엎어 새로운 정치질서를 세우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당에는 이와 함께 내년 전당대회 때 당명을 바꾸고, 당의 문호를 개방해 면모일신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의 당총재직 사퇴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민주당은 DJ의 총재직 사퇴를 계기로 정국의 'DJ 대 반DJ'구도를 깨고, 획기적인 당내 민주화를 시도해볼 여건이 성숙됐다고 판단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이를 통해 '한나라당=구시대 3김 정당'으로 몰아가자는 계산이다.

민주당의 이같은 정치실험이 어느 정도의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내 최대 세력인 동교동계가 영향력 위축을 우려하거나, 대선후보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는 측이 지나친 변화를 경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특위의 안을 논의할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한국적 정치현실에선 지나친 이상론"이란 이유로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지역별 인구편차에 따른 대의원 수 조정문제 등은 특히 합의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러나 쇄신특위는 "가능하다면 정당판을 바꿀 모든 획기적 방안을 도입해 3金 이후의 새로운 정당모델을 찾고 싶다(김민석 간사)"라고 의지를 나타내 기대해볼 만하다는 것이 당내의 다수의견이다. 이럴 경우 한나라당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혁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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