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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피치] 대동여지도를 닮은 '야구인명사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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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지난 3월 25일.1천3백여쪽 분량의 '한국야구 인명사전'을 받아들고 대동여지도를 떠올렸다.

1백50년 전인 1861년(철종 12년)에 초판이 발간된 우리나라의 고지도 대동여지도를 생각한 것은 내용의 방대.상세, 그리고 발간될 때까지 걸린 개인의 노력 등이 너무 닮아서였다.

고산자 김정호는 1834년 '청구도'라는 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이후 다시 27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 실측을 통해 각고의 노력으로 일반인이 접어 휴대할 수 있는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야구인명사전을 만든 전직 언론인 홍순일(62)씨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그는 1987년 야구인명사전의 발간을 기획했고 이후 14년 동안 매달려 옥동자를 탄생시켰다.

그는 야구인명사전을 통해 1905년 야구가 한국땅에 들어온 이래 한국야구를 거쳐간 모든 야구인을 샅샅이 찾아내 한데 묶었다. 그는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아마추어대회가 열릴 때마다 동대문구장에서 살다시피했고 희귀 자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방도 마다하지 않고 밤낮으로 찾아다녔다.

원고지로 1만8천5백장, 야구인 6천7백명에 대한 소개가 3천2백여 사진과 함께 수록돼 있는 책은 자료를 입력하는데만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작업을 혼자 해냈다. 틈만 나면 야구인을 찾아 붙들고 "언제 뭘 했느냐"고 캐묻는 그를 '이상한 아저씨'로 보는 사람도 많았고 개인정보 유출을 이유로 자료를 내주지 않는 기관도 있었지만 그는 '똑바로 갈 수 없으면 돌아서라도' 그 길을 갔다.

그리고 당당히 세상 앞에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을 내놓았다. 이런 그의 노력을 생각하면서 머리 속에 김정호의 외로웠던 구도자의 길이 떠올랐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국내 야구계는 역사의 보존이나 자료화, 훗날을 위한 준비에 소홀한 부분이 많다. 특히 경기력 향상과 저변확대를 위한 출판물의 발간이나 일반팬을 위한 안내서 등은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을 감안해도 일본.미국의 그것에 비해 훨씬 뒤떨어져 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기력이 일본.미국을 따라가는 속도에 비해 야구인들이 나름의 문화로 만들어가는 노력은 속도가 매우 느리다.

국내 야구가 1백년을 앞두고 있고 프로야구가 20년이 지난 지금 야구 관련 출판물을 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이따금 야구 관계자들의 에세이집이나 구단에서 발간한 경기 관련 지침서가 눈에 띌 뿐 정기적인 출판물은 하나도 없다. 안타깝다.

이런 현실에서 홍순일씨의 야구인명사전 발간은 후세에 길이 남길 만한 업적이요, 분명한 야구계의 한줄기 빛이다. 그는 2004년 한국야구 1백주년을 맞아 인명사전 개정판을 발간할 계획이며 향후 전문기관과 협력. 정기출판물 발행에도 뜻을 두고 있다.

중견 야구인의 모임인 '일구회(一球會)'는 28일 그를 '2001년 일구 대상' 수상자로 선정해 시상한다. 꼭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의 구도자적 정신과 노력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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