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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대통령 선거의 변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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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로 대권주자들의 행보가 빨라지면서 자연 내년 대선을 둘러싼 전망과 분석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지역성향을 전제로 한 정계개편이나 합종연횡을 통해 최선의 유권자 조합을 찾아내는 것을 대선의 성공비결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경제사정.인물 비중 커져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지역연고를 중하게 여김은 사후적으로 입증된 통계지만 개개인의 사전적인 입장에서는 투표함 앞에서 반드시 고향만 따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무엇이 대통령선거를 좌우하느냐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해답이 달라진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길고 보수와 진보의 양당정치가 정착된 미국의 경우 경제.정당.인물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정당은 유권자의 이념 성향을 반영하는 선택변수로서 하루이틀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반면 경제는 집권당의 업적을 평가하는 변수다.

당장 경제사정이 나쁘면 재집권하기 힘든 것이 미국의 실정이다. 그만큼 민생에 대한 책임정치의 틀이 확립된 증거라 보면 된다. 물론 인물도 중요하다.클린턴의 젊고 박력있는 모습을 좋아했던 사람이 있는 반면 힘이 넘쳐 안해도 될 일까지 한 것을 나무라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이 세 변수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선 정당의 경우 선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처럼 이념의 차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관권선거가 활개치던 시절에는 여당이냐 야당이냐가 관건이었고, 선거부정이 줄어든 요즘에는 지역색이 정당 선택의 주요 변수로 남아 있다.

인물의 경우는 97년의 대선 이전에는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 대다수의 유권자는 집권세력의 통제하에 있는 공영방송에 비친 조작된 이미지를 인물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했다.

결국 인물 자체보다는 여당 후보냐 아니냐가 중요했다. 경제 역시 지난 대선 이전에는 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변수였다. 고도성장에 익숙한 시기였기 때문에 시민들이 실업이나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절실하게 느끼기 힘들었다. 자연 선거철에 여당이 돈 푸는 행태에 저항하는 여론이 생성되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는 경제와 인물이 독립변수로서의 위상을 상당히 확보했다. 사실 외환위기라는 극한 상황과 TV토론이라는 인물 검증의 기회가 없었다면 金대통령의 당선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나라를 그 지경으로 만든 기득권 세력에 대한 단죄의 표시로서 여당 후보를 거부했고,나이 든 야당후보가 젊은이들도 힘든 생방송 토론을 두어시간씩 거뜬히 해내는 것을 보고 임기 중에 국장(國葬)을 치를 것이라는 악성 소문을 무시할 수 있었다.

내년 선거에서 이 두 변수의 비중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물론 지역색의 조합으로 성격이 규정될 정당이 갖는 의미가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이것은 예측의 가변성이 작은 변수다. 반면, 경제나 인물 변수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매우 클 것이다. 그만큼 이들이 갖는 전략적 의미가 중요해진다.

***갈등의 시대 이끌 지도자

내년 말에도 경제가 안 좋으면 여당 후보가 불리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경기가 하반기쯤 풀리는 경우에는 여당 후보가 유리하기보다는 경제 자체가 큰 변수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미래지향적인 인물 공방의 비중이 커지기 쉽다.

특히 지역정당만 존재하고 이념정당이 부재한 현 상황에서는 인물 변수가 단순한 호감도 차원을 넘어서 지도자의 이념과 비전을 측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개방화와 함께 다가오는 경쟁과 갈등의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라면 과감한 선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유권자에게 설득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어쩌면 내년 대선에서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이런 가변적인 요인들이 진짜 성공비결이 될지 모른다. 정치인들이 지역연고의 꼬리나 잡으러 뛰어다니는 동안 대다수의 시민들은 스스로의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이미 깨닫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정치적 이합집산과는 달리 인물이나 경제는 하루 아침에 조작될 수 없다는 것이다.

全周省(이화여대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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