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292명 중소기업이 7년째 세계일류 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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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충북 진천군 초평면 농공단지에 있는 극동전선은 자본금 1백24억원에 직원이 2백92명인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해양 케이블과 선박용 전선 분야에서 세계시장의 30%를 점유하며 1994년부터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는 극동전선의 가격과 기술력에 밀려 올해 결국 관련 업종을 포기하고 말았다.

전선업계의 '작은 거인' 극동전선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회사 임직원들은 "노조 덕분"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이 회사 노조의 모토는 '투쟁을 통한 쟁취'보다 '생산을 통한 만족'이다.1987년 노조가 설립된 후 한번도 노사분규가 없었던 배경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회사측도 노조를 '성실한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회사 최병철(崔炳哲.51)대표와 정석채(鄭錫菜.39)위원장은 "경기의 좋고 나쁨을 떠나 노사는 대화 부족으로 신뢰의 불황을 겪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같은 신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독특한 직무조정 제도.

노조위원장은 수시로 근로자의 적성을 파악하고 의견을 수용해 사장과 협의, 직무를 재조정한다.근로자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같은 직무제도 때문에 근로자들의 근무자세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노조가 중심이 된 현장 제안 활동은 99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외로부터 3천4백여 품목에 걸쳐 4백여건의 품질인증을 받는 성과를 올렸다.지난해에만 13건의 기술특허를 획득했다.

근로자의 복지를 꼼꼼히 챙기는 노조의 역할은 물론 기본이다.식당의 메뉴를 조정하는가 하면 근로자에게 지급된 동복(冬服)의 솜털이 부족하지 않은지 등 사측이 챙기지 못하는 것을 노조가 점검한다.

이처럼 기업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노조활동 때문에 이 회사는 최근 불황 속에서도 일거리가 넘쳐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올해 이 회사의 매출은 1천4백억원,순이익은 1백5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지난해 1천2백억원 매출에 70억원의 순이익을 낸 것과 비교하면 매출보다 순이익의 증가가 두배나 많은 급신장이다.

97년 1백92%이던 부채비율도 올해 상반기에는 0%가 됐다.금탑산업훈장(98년).5천만불 수출탑(98).신노사문화대상(2000).지식경영대상(2001)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이런 경영성과는 외환위기 당시부터 일년에 두 차례씩 월급의 50~2백%의 성과급으로 근로자에게 돌아갔다.

노동부 관계자는 "최근 세계 노동운동의 주요한 흐름 중 하나가 회사의 경쟁력을 키워 실리를 챙기는 것"이라며 "극동전선 노조의 경우가 바로 그런 선진적 노동운동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극동전선 노조는 노동부가 12일 펴낸 '노동운동의 풍향을 바꿔가는 21인'이란 책자에 소개됐다.

김기찬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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