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주당의 홀로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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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을 떠난 민주당은 갑작스레 안개길에 들어섰을 때의 당황스러운 모습 그대로다. '아버지가 버린 아들의 심경'이라는 당내 인사의 표현처럼 처연함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심판관이 떠나버린 대선후보 경쟁 가도를 달리는 주자들의 움직임은 위태롭게 보인다. 그럼에도 대선 예비주자들은 집안 살림을 힘모아 추스르는 데 신경을 쓰기보다 전당대회를 언제 열지, 당권과 대권을 어떻게 나눌지에만 매달려 있는 인상이다. 민주당이 '홀로서기'까지 숱한 우여곡절과 역경을 겪어야 함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민주당이 새로운 정치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선 金대통령의 결단에 깔린 고뇌와 주문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DJ의 선택은, 질시와 반목이 두드러진 집권당의 행태가 국정운영에 별다른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결별 선언이다.

이와 함께 자생력을 발휘해 차기주자 결정 등 새로운 당 운영의 틀을 짜보라는 주문이다. 총재직 사퇴 발언에 짙은 회한(悔恨)이 드러나면서도 이 대목에 당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담겨 있다. 이는 당내 쇄신파들이 요구해 왔던 '제왕(帝王)적 대통령제'의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셈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당내 민주화다. 당 운영의 기본정신을 여기에 두고 전당대회의 게임의 룰을 포함한 민주적인 당 관리 수단을 짜내야 한다.

이와 함께 국정운영에 있어 집권당으로서의 책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민주당이 여기까지 온 까닭은 민심과 가까이 하지 않은 탓이다.

대다수 국민의 관심은 당내 차기주자 결정보다 민생과 경제 살리기다.장기 표류상태인 국정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먼저 힘을 쏟으라는 게 여론의 요구다. 이른 시일 안에 체제를 정비해 야당과의 협조관계 복원에 나서야 하고, 생산적인 대정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나만 살겠다는 식'으로 비춰지는 대선 주자들의 세(勢)모으기는 자제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DJ의 비장한 정치실험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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