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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 뺨칠 국제기구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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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무디스가 이 땅을 무력화하는 데 쓴 시간은 딱 23일이었다. 1997년 11월 28일부터 12월 21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한국의 신용등급을 6단계 낮췄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였다. 투자부적격 국가. 무디스가 찍은 낙인은 위력적이었다. S&P와 피치가 곧 뒤를 따랐다. 그걸로 끝이었다. “한국 재정은 튼튼하다” “경제의 펀더멘털은 괜찮다”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었다. 아무도 달러를 꿔주지 않았다. 한국 정부·은행은 발만 굴렀다. 눈 뜨고 알토란 같은 기업·은행의 도산을 지켜봐야 했다. 돈을 빌리려면 신용등급을 올려오라는 주문만 들었다.

무디스가 우리 신용등급을 원상복구해준 건 지난달 중순이다. 낮추는 데는 23일 걸렸지만 원위치해주는 데는 13년을 끈 것이다. 그간 무디스는 상전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매년 무디스 실사단이 방한하면 재정경제부 과장이 직접 수발을 챙겼다”며 “그런 칙사대접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우리만큼 무디스에 혼난 게 일본이다. 걸핏하면 신용등급 강등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오죽하면 일본 관가에선 지금껏 “미국과 무역분쟁이나 정치적 알력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무디스가 등장한다”고 원망할까. 시작은 98년 5월이었다. 무디스는 당시 최고 수준이던 일본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유는 ‘일본의 정치가 무능하다. 능력이 의심받고 있다’였다. 일본 재무성은 “경제 아닌 정치를 잣대로 들이댔다”며 “무디스의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 고 반발했다. 한걸음 더 나가 “무디스를 평가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무디스는 들은 체도 안 했다. 대신 2000년 다시 등급을 낮추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일본이 한 발 물러섰다. 당시 기이치 미야자와 대장상은 “일본의 신용등급을 낮추지 말라”고 호소해야 했다.

호되게 당한 일본은 ‘맞불’을 선택했다. R&I와 JCR, 두 개의 자국 신용평가사를 키워 다른 나라의 신용등급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10년 적공(積功)을 들였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주로 동남아 국가가 대상이고 규모나 영향력도 작다. 세계 국채 시장의 절반 정도를 주무르는 무디스 등과는 언감생심 비교 자체가 어렵다. 한국은 더 딱하다. 외환위기 이후 키운다고 키웠지만 3개의 신용평가 회사 중 2개가 각각 무디스와 피치 손에 넘어간 지 오래다. 하나 남은 토종인 한신정평가는 올 하반기에야 다른 나라 국가등급을 평가할 계획이다. 그나마 아직은 동유럽·동남아 몇 개국이 고작이다. 무디스와 경쟁은커녕 국내 텃밭 지키기도 힘에 부칠 지경이다.

잊고 싶은 이름을 장황하게 다시 떠올린 건 유럽의 경제 위기 때문이다. 위기엔 희생양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번엔 무디스와 S&P, 피치가 도마에 올랐다.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뒤늦게, 한꺼번에, 제멋대로 낮췄다는 게 죄목이다. 유럽연합(EU)은 “신용평가사들이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업무를 진행하는지 조사할 방침”이라고 각을 세웠다. 독일은 한 술 더 떠 EU만의 신용평가기관을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판을 바꾸려면 지금이 기회다. 유럽이 도와줄 때 국제신용평가기구나 신용평가감독기구 설립 논의를 본격화하자. 논의의 방아쇠를 당기는 건 한국이 적임자다. 당해본 사람이 고통도 아는 법이다. 당장 6월 부산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테이블에 의제로 올리자. 잣대도 불분명한 민간 회사 손에 나라의 명운을 쥐여주는 악연의 고리를 이젠 끊을 때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