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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그림, 식기 같은 도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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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조선 분청사기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린 윤광조씨의 ‘음율’, 김종학·최정화씨의 꽃그림이 어울린 가람화랑은 지금 봄이다.

쌍쌍이 뭉쳤다. 나이 차도 성별도 벽이 될 수 없다. 남녀노소가 어울린 전시장이 훈훈하다.

꽃을 그리고 만드는 화가 김종학(68).최정화(43)씨, 흙을 빚어 그릇을 굽는 도예가 김익영(69).윤광조(58)씨가 나란히 작품을 내놨다. 해묵은 미술 벗은 태깔도 닮는다.

서울 관훈동 가람화랑은 지금 봄이 한창이다. 벽과 바닥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설악산에 파묻혀 꽃그림만 그리고 사는 김종학씨는 나이 들수록 더 화사해지는 꽃그림을 그들먹하게 내걸었다. 노점상이나 굿판에 어울림직한 촌스럽고 통속적인 꽃을 사랑하는 최정화씨는 알록달록 큼직한 꽃을 벙긋 피웠다.

두 사람이 생명을 준 꽃은 야릇하게 어우러져 관람객 눈을 유혹한다. '김종학 최정화 어!'란 전시제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사람이 2인전을 하는 것도'어!'요, 꽃사태가 난 모습도 '어!'다.

최정화씨는 "즐겁자는 미술인데 요즘 미술은 무섭고 어렵고 힘들지 않느냐"며 "기쁜 우리 미술을 와서 씹어달라"고 부탁했다. 12월 12일까지. 02-732-6170.

김익영.윤광조씨는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윤수)이 뽑은 '올해의 작가 2004'전에서 머리를 맞댔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1전시실을 채운 두 사람의 그릇은 도예의 현대화라는 임무에 평생을 바친 동지애를 보여준다. 훌륭한 도자기 전통을 자랑하면서도 정작 근대 이후에는 이렇다 할 우리 그릇이 없었다는 뼈아픈 반성이 이들을 오늘까지 이끌어왔다. 김씨가 조선시대의 백자를 도예의 고향으로 삼았다면, 윤씨는 분청사기를 정신의 근원으로 섬겼다.

김익영씨는 특히 식기처럼 생활 속에서 쓰이는 그릇 창작에 애써왔다. 그는 "용(用)이라는 공예의 사회성이 중요하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좋은 그릇을 더 싸게 보급한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왔다"고 말했다.

윤광조씨는 분청이 지닌 자유롭고 거친 기질을 받아들였다. "외적 형식의 유사성에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잉태했던 내적인 존재를 감지하고 공부하여 새로운 독자적인 조형으로 표출할 때 미래로 향한 도도한 전통의 맥을 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은 분청을 통한 한국 현대 도예 창조의 다짐이다.

윤씨 또한 1970년대 말 개인전에서'생활 용기'라는 말을 써 김씨처럼 일상에 스며든 도예의 기능을 중시했다. 같은 길을 걷는 예술 도반의 이심전심이다. 12월 26일까지. 02-2188-600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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