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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6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즉 선대에 있었던 김헌창(金憲昌)의 난은 주로 변방의 토호세력들을 규합하여 중앙 귀족세력에게 도전해온 대반란이었던 것이었다.이때 김헌창에게 동조하여 반란을 일으킨 지방세력들이 바로 지금의 전주인 완주(完州)사람들과 광주인 무진(武珍)사람들이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흥덕대왕은 장보고의 진영을 옛 백제인들의 본거지인 청해에 설치한다면 이들 토호세력들의 불만을 사전에 진압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김충공이 꿰뚫어 보았던 흥덕대왕의 '멀리 있는 물로도 가까운 불을 능히 끌 수 있다(遠水能救近火)'는 비책이며, 개혁을 꿈꿔왔던 흥덕대왕이 선택한 비장의 카드였던 것이었다.

어쨌든 장보고가 흥덕대왕에게 간한 내용은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어디를 가보나 우리 사람들을 노비로 삼고 있습니다.따라서 청해에 진영을 설치할 수 있다면 해적들이 사람들을 약취(掠取)하여 서쪽으로 가지 못하게 할 수 있겠나이다."

사기에 기록된 장보고의 말로 짐작할 수 있듯이 장보고는 사람들을 강제로 약탈, 인신매매하여 노예로 만드는 행위에 대해서 극도의 증오심을 갖고 있었던 휴머니스트였던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드물게 해적을 소탕하여 노예해방을 꿈 꿔왔던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였던 것이다.

장보고가 왜 이토록 인간을 노예로 삼는 해적에 대해서 뿌리 깊은 증오심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그 개인적인 이유는 훗날 밝혀질 것이고, 어쨌든 『삼국사기』는 그 후의 결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대왕이 장보고에게 군사 만명을 주어 청해에 설진(設鎭)하게 하니, 그 후로 해상에서는 국인(國人)을 사고 파는 자가 없었다."

이 기록을 봐서 알 수 있듯이 흥덕대왕은 흔쾌히 장보고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장보고의 고향인 청해에 진영을 설치하였을 뿐 아니라 만명의 군사까지 주어서 그에게 유례 없는 병권(兵權)까지 주었던 것이었다.

이로써 장보고는 대상인으로서의 상권(商權)뿐 아니라 병권까지 장악한 당대 제일의 실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만명의 병졸을 주어 청해를 진수케 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대해서 많은 의문점이 있다.

그 무렵 신라의 조정에는 장보고에게 만명의 군사를 줄 만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왜냐하면 김헌창의 난이 일어나 피비린내가 나는 골육상쟁의 내전이 있었던 것이 불과 6년 전의 일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록에 나와있는 것처럼 신라의 조정에서는 장보고에게 만명의 병졸은 주지 못하였을 것이며, 그 대신 장보고에게 만명에 해당하는 민병(民兵)을 징발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했을 것이 틀림 없는 것이다.

어쨌든 아무리 중국에 들어가 군중소장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개 백제인이자 해도인이었던 장보고에게 이처럼 특권을 부여한 흥덕대왕의 개혁의지는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뿐인가.

흥덕대왕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지위를 장보고에게 제수(除授)하였던 것이었다. 상대등을 비롯하여 많은 군신들로부터 추천을 받아야만 벼슬을 내리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장보고만큼은 대왕이 직접 제수하였던 것이었다.

"짐은 경에게 만명의 군사를 징발할 수 있는 병권을 부여한다."

마침내 장보고의 제안을 받아들인 흥덕대왕은 장보고에게 진영을 설치할 수 있는 권한과 만명의 군사를 징발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적힌 교지(敎旨)를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따라서 짐은 경에게 다음과 같은 사령(辭令)을 내린다."

임금의 사령은 왕지(王旨)로 불리는 일종의 어명이었다. 흥덕대왕으로부터 교지를 받은 시중 김우징은 이를 펼쳐서 여러 백관들에게 보여 말하였다.

"대왕마마께오서는 장보고를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에 제수하시었소."

장보고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대왕마마가 내린 교지를 받아들었다. 그 순간 전 신하들은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흥덕대왕이 장보고에게 내린 대사(大使)라는 직책은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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