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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형제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법의 이름으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행위인 사형은 가장 역사가 오래 된 형벌이다.

인류 최초로 사형제를 성문화(成文化)한 법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으로, 25개의 범죄를 사형으로 처벌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조선의 8조 법금(法禁)에 살인한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고 명기돼 있다.

죽는 거야 다 똑같겠지만 고대로 갈수록 사형 집행방법이 잔혹했다. BC 5세기 로마법이 규정한 사형방법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행한 십자가형을 비롯, 화형.익사형.자형(刺刑) 등이 있다. 사형과 고문을 함께 행하는 형태였다.

서양에서 교수형이 도입된 시기는 한참 뒤로 10세기 영국에서 보편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극에 흔히 나오는 사약(賜藥)과 교수형.참수형.능지처참형 등이 있었지만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교수형만 남았다.

얼마 전 오클라호마시 연방청사 폭파범 맥베이의 사형을 집행, 사형제 폐지논란을 불러일으킨 미국에는 현재 약물주입.전기의자.가스실.교수형.총살형 등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이중 약물주입이 가장 일반적으로 연방정부와 36개 주가 채택하고 있다.

아직도 널리 회자(膾炙)되는 기요틴(단두대)은 프랑스혁명 당시 이를 도입한 기요탱 박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영어로 길로틴이라 하는데 고통 없이 죽게 하겠다던 당초 의도와 달리 공포정치의 상징으로 악명을 떨쳤다. 기요탱 박사 역시 기요틴에 의해 처형됐다는 설도 있다. 1981년 사형제를 폐지한 프랑스는 77년까지 기요틴을 사용해 왔다.

역사상 사형제 폐지를 처음 주장한 인물은 11세기 영국의 정복왕 윌리엄 1세다. 전시(戰時) 이외의 사형을 폐지한다고 발표했으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본격적으로 사형폐지를 주창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계몽사상가 베카리아로, 1764년 발간한 『범죄와 형벌』에서 국가의 살인에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켜 오스트리아와 토스카나가 사형제를 폐지했고 이후 사형폐지 운동의 모태가 된다.

국회의원 1백54명이 사형제도 폐지를 골자로 한 특별법안을 제출, 이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본격화할 조짐이라고 한다. 흉악범죄를 예방하는 필요악이라는 주장과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시대착오적 행위로 범죄예방 효과가 오히려 적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국민 여론도 대충 반반으로 갈려 있는 모양이다. 둘을 다 만족시킬 묘수는 없을까.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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