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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금강산 고집은 '장군님 뜻' … 정부 낭패 자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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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의 개최장소로 수용한 금강산 지역은 열악한 환경 탓에 회담장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회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에 따라 북측 주장에 끌려 이 곳을 회담장으로 삼은 졸속판단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순조로운 회담진행을 위해서는 예상 걸림돌을 정부가 꼼꼼히 짚고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민감한 현안을 다루는 데 필수조건인 통신.교통망이 열악한 게 정부가 기피해온 가장 큰 이유다.

이 곳 회담때 다녀온 당국자는 "핵심사안을 협의하다 보면 양측 모두 서울.평양에 훈령(訓令)을 받아야 할 경우가 있지만 통신문제로 지장을 받은 적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1월 열린 4차 적십자회담 때는 반나절 정도 서울-평양-금강산간 남북 직통전화가 두절돼 우리 회담관계자들이 속을 태우기도 했다.

대표단이 나흘에 한번 운항하는 현대측 쾌속관광선(설봉호)을 이용해 방북하기 때문에 회담일정을 조절할 수 없고, 판문점을 통해 회담물품이나 문건이 든 행낭을 전달하기도 어렵다.

전력사정이 여의치 않아 저녁식사중 전기가 끊어져 '촛불만찬'이 된 경우도 있고, 지난달 금강산 관광당국회담 때는 정전으로 수석대표간 접촉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전압이 낮아 컴퓨터를 사용 못하기 때문에 노트북 컴퓨터를 관광선에서 충전.사용하는 등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회담장인 금강산여관은 지난해 10월 현대가 임차한 후 방치해 폐가(廢家)처럼 됐다.

또 난방이 되지 않아 회담만 이곳에서 하고 잠은 9㎞ 떨어진 현대측 해상호텔이나 관광선에서 자야 하는 불편도 있다.

회담 사령탑인 상황실을 금강산여관과 해상호텔 두곳에 차려야 하는 것도 문제다.

결국 이곳에서 세차례 열린 적십자 회담 등과 달리 남북관계의 중심축인 장관급 회담은 규모나 상징성 면에서 서울.평양에서 번갈아 개최하는 관례를 따랐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은 3차 회담이 제주에서 열린 점을 금강산 개최 주장의 근거로 말하지만 금강산 시설을 제주와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은 그들도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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