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불길’ 잡아야 유로존·미국 지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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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경제가 회복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분석이다. 그리스 위기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일단 진정됐다가도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지는, 세계 경제의 상시적 위험이란 것이다.

유럽과 미국도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 각국은 문제의 소멸이 아니라 확산 방지에 대책의 초점을 맞췄다. 유로존 국가들은 남유럽 몇 개 나라의 문제가 유로 전체의 문제, 그러니까 공동 통화체제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역량을 집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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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정상회의에 참석한 유럽중앙은행(ECB)의 한 직원이 유로화 로고가 새겨진 종이가방을 들고 있다. 이날 정상들은 유로화 위기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브뤼셀 로이터=연합뉴스]

◆유로를 지켜라=벨기에 브뤼셀에서 7일(현지시간) 열린 유로존 정상회의는 ‘유로 지키기’ 회의였다. 정상들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회원국에 대한 강력한 처벌, 유로 체제 공고화를 위한 대책반 설립, 회원국 간 경제정책 공조 강화 등에 합의했다.

당초 이 회의는 그리스 구제금융안의 최종 승인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성격이 바뀐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 지원만으로는 유로존의 전체적 안정이 확보될 수 없다”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 방문 계획도 취소하며 유로존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내부 결속을 다지는 한편 외부의 적도 명확히 했다. 투기 세력을 향한 경고였다. 장클로드 융커 유로그룹 의장은 “전 세계적으로 조직화된 세력이 유로를 공격하고 있다”며 “유로존은 공동 대응해 금융 규제를 강화하고 투기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헤르만 반 롬푀이 유럽연합(EU) 상임의장은 “현 위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책임감과 결속”이라고 강조했다.

유로존 국가들은 이번 주 중 그리스에 대해 1차 구제금융을 지원할 방침이다.

◆대서양을 지켜라=미국 증시는 미국 한 나라의 증시가 아니다. 미국 시장이 무너지면 아시아도 안전하지 않다. 그 방어막에 이미 균열 조짐이 나타났다.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지난 일주일간 5.7% 하락했다. 2008년 10월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한 주였다.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뉴욕 증시의 공포지수(VIX)는 7일 하루 동안 24.85% 오른 40.95를 기록했다. 일주일 새 무려 88% 높아졌다.

대서양 너머의 일에 미국이 민감한 것은 재정적자가 미국의 고질병이기 때문이다. 백악관 예산국은 올해 미국 재정수지 적자가 1조6000억 달러(약 184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달러를 찍어 낼 수 있다는 점을 빼면 미국은 벌써 그리스 꼴이 됐어야 할 판이다. 대서양이 뚫리면 태평양이 뚫리는 건 시간 문제다. 일본의 재정 관련 지표는 세계 최악이다. 나랏빚은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가 넘는다. 그리스(1.3배)보다 심각하다. 일본은 채무보다 채권이 많기 때문에 표면화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흔들리는 상황이 오면 일본은 다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초부터 일본의 재정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해법은 달리 없다. 유럽의 악재를 이길 만한 경제 회복세를 보이는 것뿐이다. 다행히 미국의 고용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일자리는 29만 개 늘었다. 최근 4년 중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시장의 예상(최대 20만 개)을 훌쩍 넘어선 수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가장 뚜렷한 증거”라고 말했다.

김영훈·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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