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주인·세입자의 따뜻한 사랑 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그 아이를 그냥 두고볼 수 없었어요.”

병마와 싸우는 세입자를 위해 집주인이 팔을 걷고 나서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다세대주택 주인 성남순(成南順 ·56 ·대구시 북구 산격2동)씨는 요즘 1층에 세들어 사는 여대생 최화경(崔華慶 ·25 ·경북대 무기재료공학과 4년)씨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바삐 뛰고 있다.

崔씨의 병명은 ‘발작성 야간혈색소 요증’. 지난 4월 복통으로 시작돼 두달 전에야 확인된 희귀병이다.경북대병원은 적혈구가 파괴되는 병이라 당장 골수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단 진단을 내렸다.수술비는 4천여만원.

그러나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崔씨는 전세보증금 1천5백만원이 전 재산.여상을 졸업하고 취업했던 막내 동생도 언니를 돌보느라 얼마전 직장을 그만 뒀다.

딱한 사정을 안 成씨는 올 들어 삭월세 3백만원을 받지 않았다.전기요금 등 각종 공과금도 대신 물었다.그리고는 당장 필요한 병원 검사비 등에 쓰라며 1백여만원을 내놓았다.그것도 그냥 주면 거절할 것같아 온라인 계좌를 알아내 송금했다.

崔씨네 가족이 이 집으로 이사온 것은 3년전쯤.그때만 해도 화경씨는 건강했다.어머니는 몇년째 중풍을 앓고 있었다.병이 악화되자 화경씨는 휴학하고 2년간 어머니 수발을 들었다.병자 냄새가 나지 않도록 매일 어머니를 씻기고 대소변을 받아냈다.그러나 어머니는 지난해 숨을 거뒀다.

그때도 음식 등을 건네며 화경씨를 도왔던 成씨는 “요즘 같은 세상에 보기 드문 효녀”라고 말했다.

최근 수술이 다급해지자 成씨는 이웃에 다시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다.자신 역시 엄청난 수술비를 보탤 형편은 되지 않아서였다.통장을 맡고 있는 그는 먼저 동사무소와 새마을금고를 찾아갔다.

지난 7일 열린 동민체육대회에서 주민들은 딱한 사정을 듣고 즉석에서 1백40여만원을 모금했다.통장들의 모임인 통친회와 자유총연맹도 각각 1백만원을 모았다.동네 유지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격2동새마을금고는 이달초 모금함을 설치하고 동네 곳곳에 호소문을 붙이는 등 화경양 돕기에 들어갔다.

화경씨는 26일 수술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병원측의 권고에 “돈 문제는 우선 접어두자”는 成씨의 말만 믿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다음달 1일 입원해 12일 수술하는 일정.

자식 3남매를 둔 成씨는 “지금은 죽어가는 화경이를 살리는 일이 급하다”며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만일에 대비해 요즘 주변을 정리중인 화경씨는 “유전자가 같은 막내 동생의 골수를 이식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아주머니의 은혜를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송의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