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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미, 이말 저말 … 진심은 '약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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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미국의 달러정책이 투자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입으로는 '강한 달러'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약한 달러'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칠레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고 '강한 달러'정책을 다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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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은 이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에서 "강한 달러 정책을 통해 재정 적자를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강한 달러 정책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며 부시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했다.

반면 미국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이례적으로 환율에 대해 언급하면서 달러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1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럽 금융인 회의에 참석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커 어느 땐가 달러 매각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에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지난 17일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은 "(외환시장에) 인위적 개입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달러 약세를 받아들이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일본이나 유럽 각국은 미국 정부가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미 달러당 103엔 안팎의 달러 약세(엔화 강세)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언론들은 금융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부시 대통령이 '강한 달러'를 언급한 것은 일종의 '립서비스'"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금융 당국자들도 "부시 정권은 이제까지 몇번이나 '강한 달러'를 계속 이야기해 왔지만 구체적인 달러 약세 타개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며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지난 주말 이틀 일정으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회담'에서는 달러화 약세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제기했다.

이 회담을 주최한 독일의 한스 아이헬 재무장관은 "환율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유럽중앙은행(ECB)뿐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들이 달러 약세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드리고 라토 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외상이 발생한 상황에서 미국은 시장의 힘에만 의존하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며 미국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독일의 유력 경제신문인 한델스 블라트지는 시장 참여자들의 말을 인용, 그린스펀의 발언은 달러 약세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달러는 유로당 1.40달러를 넘고, 달러당 100엔선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 이후 시장에서는 달러화 가치가 폭락했다. 미 뉴욕시장에서 유로당 달러 환율은 지난 19일 1.3027달러까지 올라갔다. 엔-달러 환율도 장중 한때 102엔대에 진입했다가 장 마감 무렵에는 103.07엔선에 거래됐다. 전날(104.22엔)보다 달러당 1.15엔가량 떨어진 것이다.

뉴욕.도쿄=심상복.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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