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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떠돌던 '꽃제비들' 첫 국내 정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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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힘센 군인이 되고 싶어요."

"나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목사가 될 겁니다."

'꽃제비'로 불리는 부모 없는 탈북 어린이 네명이 낯선 남한 땅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16일 경기도 A시의 한 단독주택 2층. 열세살이지만 여덟살 정도 체구인 준호(가명)는 새로 시작할 생활을 "긴장은 되지만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국 지린(吉林)성을 출발,험난한 여로를 거쳐 한국에 도착한 지 석달.

아직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한 듯 웃지도, 큰소리로 말하지도 못하지만 이들의 말 속에는 희망이 들어 있다.

이들을 돌봐줄 '가장'은 1998년부터 중국을 오가며 탈북 어린이를 보살펴온 김동수(가명.30)씨다.

네 아이와 金씨의 만남, 그리고 남한으로의 탈출은 드라마였다.

준호와 그의 형 명호(15), 그리고 세영(18).승현(14) 모두 중국의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거나 주워먹는 부랑아였다. 혼자 탈북했거나 가족이 중국당국에 붙잡혀 흩어진 처지였다.

96년 서울예전(문예창작과)을 졸업한 뒤 봉사단체 등에서 일해오던 金씨가 꽃제비들의 비참한 생활을 언론을 통해 접한 뒤 빚을 내 무작정 지린성을 찾아간 건 98년 10월.

종교단체 등으로부터 모인 후원금으로 옷가지.책 등을 장만, 중국을 오가면서 金씨는 30여명의 꽃제비를 보살피는 '대부'가 됐다. 그중 준호 등을 1차로 한국에 데려오기로 결심한 건 지난 4월. 지린성을 떠나 베이징(北京)에서 제3국 탈출을 안내할 브로커를 찾아 아이들을 인도하는 데 꼭 한달이 걸렸다. 먼저 서울로 건너온 뒤 초조하게 이들을 기다리며 다시 한달이 갔다.

그 사이 준호 등은 브로커를 따라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국경을 넘었고, 제3국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거쳐 무사히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18세 총각인 세영이를 포함, 이들은 곧 한참 어린 아이들과 함께 초등학교에 다닐 예정이다. 기초부터 적응하기 위해서다.

金씨가 이들과의 생활에 들어갈 돈은 집세를 포함, 한달에 1백50만원선. 지린성의 아이들 생활비로도 월 1백20만원을 송금한다. 아는 교회 등지에서 보태주는 후원금으로 빠듯하게 버텨나간다. 그래도 金씨는 또다른 준호들을 데려오기 위해 연말에 다시 중국에 갈 계획이다. 金씨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환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라며 2년 전의 일기를 꺼내 보였다.

'나는 두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도강(渡江)한 아이들은 성장이 정지된 잠재적 장애아다… 이대로 두면 그들은 내가 느꼈던 절망보다 더 큰 좌절 앞에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金씨는 목발에 의지해 사는 장애인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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