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건강기능식품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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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치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

40대후반의 직장인 김 귀남씨가 클리닉을 찾았다. 갈수록 몸에 힘이 없고 피곤하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그 증세가 부쩍 더 심해져 오후만 되면 도저히 일을 할수 없을 정도로 피곤함이 심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김씨는 ‘병원쇼핑족’이 되었다. 병원을 찾아갈 때마다 김씨에게 돌아오는 것은 이런 저런 검사와 증세에 대한 불안감 뿐이었다.

건강검진 결과에서 특별한 이상이라고는 간수치의 경도 상승, 정상범위 내에서 다소 증가되어 있는 혈당 정도 밖에는 없는 김씨에게 특별한 병명이 붙을리 없으니 김씨가 주렁주렁 달고다니는 병명은 신경성이나 과민성, 조금더 더 구체적이라면 만성피로증후군 정도였다.

김씨가 나에게 왔을 때, 그가 쇼핑백에 가득 넣어 온 것은 3년간의 건강검진결과표, 8개의 병원에서 처방받은 내역과 자신의 증상을 적은 ‘병원쇼핑일지’, 족히 건강기능식품점을 차려도 될 만큼 어마어마한 건강기능식품 뭉치였다. 그가 들고 온 건강기능식품은 단순한 종합비타민세트를 벗어나 의사들도 이름을 들어보기 힘든 생소한 종류까지 다양하였다.

그와의 면담이 끝날 즈음, 내가 건강기능식품 뭉치에 눈길을 주자, 그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선생님,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뭐가 그렇게 이해가 안되세요?”
“이렇게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은 다 먹고 있는데도 왜 건강이 안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유를 진짜 모르세요?”
“건강기능식품때문에 건강이 안좋아진 것입니다.”
“예???”

왜 그의 유난한 건강기능식품 사랑이 지금 그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일까?

그가 건강을 위해 복용한 건강기능식품이 문제가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건강기능식품을 건강을 해치는 위해 건강행위에 대한 면죄부로 사용하고 있었다. 술을 먹고 난 다음 날은 간기능해소효과가 있는 건강기능식품을 먹으면서 자신을 위안하고 있었으며 담배를 줄기차게 피면서도 호흡기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있었다.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초래된 뱃살을 다이어트에 효험이 있다는 단백질 성분이 든 건강기능식품으로 대체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미 건강기능식품을 빼고도 엄청난 초과열량섭취중이었다.

둘째, 응당 해야할 건강행위를 하지 않으면서 건강기능식품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는 바쁘다는 핑계로 2년째 건강검진을 미루고 있었으며 운동 역시 게을리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나마 건강기능식품이라도 먹으니까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건강기능식품이 건강대신하기의 강력한 도구가 된 셈이다. 기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건강이 나빠진데는 건강을 대신하는 다양한 도구들이 작용하는데 건강기능식품도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그런 나쁜 습관이 될수 있는 것이다.

셋째, 그가 복용하고 있는 건강기능식품 중 일부는 효능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식품들이었다. 건강기능식품을 마구 사들이다보니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최소한의 경계조차도 사라졌다. 그가 구입한 건강기능식품 중 일부는 아직 과학적인 검증을 거쳐야 할 필요성이 더 있는 식품들이었다. 건강기능식품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김귀남씨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조언을 하였다.

사실 지금 그의 만성피로는 과로, 복부비만, 지나친 흡연, 절대적인 활동량 부족, 그리고 잦은 술자리에 의한 건강능력의 저하에 있었다. 따라서 그가 다시금 건강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절주와 금연, 그리고 체중감량과 휴식이었는데 그는 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건강기능식품으로 탈출구를 삼은 셈이었다. 얼마 전 건강기능식품 관련 강의를 하시는 건강기능식품 업계 관계자의 말씀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닿는다.

“건강기능식품은 건강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기보다는 건강을 유지하는데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요.”

나는 건강기능식품 취급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강의를 하는 그를 보면서 참으로 올바른 식견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기능식품은 건강기능식품일 뿐, 자신의 온전한 건강의 A부터 Z가 될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서랍장에 가득 쌓인 건강기능식품들이 독이 되어 돌아올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김귀남씨는 우선 습관적인 건강기능식품 구매 행태부터 버렸다. 그리고 체중감량을 위한 다이어트습관훈련에 돌입하였고 음주 횟수와 흡연 개비수를 반으로 줄였다. 체중이 줄어드는만큼 건강기능식품의 갯수 또한 단촐해지고 정예화 되었다. 그러자 그를 지배하던 만성피로는 한결 개선되었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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