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작가 귄터 그라스 슈피겔지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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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양철북』의 작가로 199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귄터 그라스(73)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대해 "모든 전쟁은 반문명적"이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다음은 그가 독일의 슈피겔지와 가진 인터뷰 요약.

-이번 전쟁이 정당하거나 문명적이라고 생각하나.

"군사공격이란 언제나 반문명적이다. 식량투하 작전을 병행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유엔이 다른 구호단체와 함께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해온 일이 문명적이다. 이제는 공습으로 더 이상 이 일도 할 수 없게 됐지만."

-공습 이후 TV에서 보는 모든 것을 불신하나.

"이 전쟁이 미국의 표현처럼 '이 깡패국가, 저 깡패국가'를 상대로 한 수년간의 장기전이 될까 걱정이다. 군사공격은 절망을 가져다 주는 부적절한 수단이다."

-이번 공격은 뉴욕과 워싱턴에서의 테러라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 미국이 정당한 것 아닌가.

"미국 국민을 부당하게 테러공격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테러의 희생자들에겐 동정을 느끼지만 미국 정부에 대해선 결코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

-미국 정부에 대한 불만이 무엇인가.

"빈 라덴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당시 소련에 대적하기 위해 돈을 줘가며 훈련시켰다. CIA는 기본적으로 정치인 암살도 서슴지 않는 테러집단이다. 다른 사람만을 (테러리스트라고)가리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슬람 테러의 위험이 상존하는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은 세계를 선과 악으로 갈라놓았다. 이제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이 됐지만 '내 것'만 챙기느라 나머지 세상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이제 미국의 지식인들까지 '왜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나'라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은 잘된 일이다."

-공영 ARD방송의 앵커인 울리히 비커르트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 때문에 공격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을 비판했다고 비난받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비커르트가 부시와 빈 라덴을 비교한 인도 작가의 날카롭고도 정확한 분석을 인용한 것은 정당했다. 미국에 대한 비판을 반미주의로 모는 것은 어리석은 중상모략이며, 친구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미국에 대한 비판이 친구에 대한 예의인가.

"진정한 우정이란 친구가 잘못을 할 위험이 있거나 잘못을 반복하려 할 때 팔을 잡아끌어 이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공개적 비판은 충정이다. 이를 반미주의라 한다면 대화는 끝난다. 자유란 우리 자신의 자유, 특히 언론의 자유가 보장될 때 지켜진다."

-베를린 예술아카데미가 빈국과 부국간 문제를 논의할 포럼을 계획하고 있는데.

"고(故)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남북위원회 의장으로서 두 가지 보고서를 냈다. 여기서 그는 동서대결이 지나면 남북대결이 온다고 예언했다. 그는 특히 제3세계를 동등하게 대접하라고 요구했지만 이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게 바로 테러가 발흥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브란트 보고서를 기초로 하고 세계화의 영향을 감안한 세계경제회의를 개최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런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고는 결코 테러리즘을 해결할 수가 없다."

정리=유재식 베를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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