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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위치추적기, 통화 몰래 녹음 007 뺨치는 스파이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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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2지방선거 1일 오전 8시25분쯤 곡성군 곡성읍 영재교육센터 앞. 조형래 전남 곡성군수가 탄 승용차를 운전하던 전모(39)씨는 차량 뒷부분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차량을 세운 뒤 밑을 들여다보자 휴대전화 크기의 물체가 양면 테이프로 부착돼 있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이 있는 위치추적기였다. 조 군수 측은 “지방선거와 관련해 우리의 행적을 감시하기 위해 누군가 몰래 붙인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조 군수는 민주당 후보로 공천된 상태이며, 현지 경찰서장 출신과 경쟁하고 있다.

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상대 후보를 쓰러뜨리기 위한 도청과 탈법 발언 녹음이 판치고 있다. 상대 후보는 물론 같은 당 내부에서도 몰래 녹음을 하고 이를 공개하는 추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남 화순에서는 비밀녹음을 놓고 공방이 일자 주민들의 비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화순군의 한 민간단체는 2월 8일 “현 화순군수의 형 전모씨가 ‘100억원을 써서라도 동생을 당선시키겠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이 단체는 그 증거로 이 지역 주민인 A씨가 녹취한 관련 전화 통화기록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전씨는 “임 전 군수가 후배인 A씨를 시켜 자신의 발언을 녹음한 뒤 이를 임 전 군수와 가까운 민간단체에 건넸다”고 반박했다. 전씨는 또 임 전 군수가 A씨에게 녹음을 부탁하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증거로 내밀었다. A씨가 양쪽 진영 말을 녹음해 이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 화순군청 공무원 최모씨는 “A씨가 전씨와, 그리고 임 전 군수와 대화할 때 각각 녹음해 둔 것 같다”며 “언제 누가 어디에서 내 말을 녹음할지 몰라 무서운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경북에서는 이한성(문경시·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시장 후보 공천을 둘러싸고 신현국 현 문경시장의 측근인 송모씨와 한 전화 통화 녹취록이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지난달 8일 한 지역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 녹취록은 이 의원이 지난달 말 신 시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된 송씨와 통화한 내용이다. 송씨는 2006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신 시장의 변호사 비용 3억원가량을 대신 낸 혐의를 받고 있다. 녹취록에서 이 의원은 “신 시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는데 그걸 차분하게 마음을 먹고 사실대로 자세하게 얘길 해야 돼요” 등으로 말한 것이 드러났다. 이 의원은 “송씨 측에서 먼저 전화가 왔고 법률적 조언을 했을 뿐”이라며 해명했지만 신 시장 측은 “부적절한 통화”라며 몰아세웠다.

이에 앞서 3월 26일 전북 익산시에서도 민주당 익산을 지역위원회 내부 녹취록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녹취록에는 당직자들이 익산시장 경선 후보자들에게 경선 비용 명목으로 5000만원을 요구했다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민주당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전직 시 의원들이 시내 한 레스토랑에서 당직자들 간 대화를 몰래 녹음해 공개한 것으로 파악됐다.

송의호·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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