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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주도형으로 바뀐 청소년 봉사활동

중앙일보

입력


청소년들의 봉사활동이 변하고 있다. 중고교생들이 지역센터 등과 인연을 맺고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 실천하는 자기주도형 활동이 늘었다. 용인지역 중고생 환경 기자단 동아리 ‘늘해랑’ 회원들도 용인이주민센터에서 벽화 그리기장터 등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을 고안해 활동하고 있다. 자기주도형 봉사활동, 그 현장을 찾았다.

벽화 그리기·장터로 이주민 센터와 관계 맺어

“좋은 물건 많아요, 구경하고 가세요. 아주머니, 잠깐만. 이 액자가 튼튼하고 아주 좋아요.”오태철(경기 용인 태성중 3)군이 노련한 장사꾼처럼 행인들을 불러 모은다. 축구 묘기로 이목을 끄는가 하면 피켓을 들고 시내를 한바퀴 도는 등 한 개라도 더 팔려고 동분서주한다. 25일 ‘늘해랑’ 회원 30여명과 후엔(25)등 베트남 이주민 3명이 마련한 장터다.

이날 장터의 주제는 ‘다문화가정’. 재활용품을 판매해 수익금을 용인이주민센터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나현철(경기 용인 태성고3)군은 “지역주민으로서 이주민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기획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지역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날 장터는 기획부터 물품준비, 판매까지 모두 학생들이 직접 했다. 단순히 지원자가 아니라 학생들이 주체가 돼 봉사활동을 추진했다. 경기 용인 태성고 2학년 친구들인 박건우최형록조재현군의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이 계기가 됐다. 용인이주민센터에서 한글교육 보조교사 활동을 하던 중 이주민센터를 예쁘게 꾸미면 분위기가 살겠단 생각에 센터에 오는 이주민들을 설득해 일을 벌였다. 지난 5개월간 작업한 것이 지금은 이주민 센터의 벽을 가득 메웠다. 동아리 회장인 나군은 이런 후배들의 활동을 듣고 바로 ‘늘해랑’ 회원들의 설득에 나섰다. 이주민센터와의 연결고리는 박군 등 태성고 2학년 3인방이 맡았다.]

이벤트가 아닌 일상적인 봉사활동이 중요

그러나 이주민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엔 도달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가 없었다. 이 때 한은숙 지도교사가 학생들이 모두 모인 전체회의 자리에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지구의 날(4월 22일)과 ‘세계청소년자원봉사의 날’ 주간이 겹쳐있으니 ‘환경’이라는 주제로 봉사활동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내용이었다. 결국 장터로 봉사활동 아이템이 결정됐다.

한 교사와 나군 등 몇 명이 제안서를 들고 이주민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이주민들이 그리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학생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기획과 추진방식이 뭔가 잘못됐다는 점을 깨달았다. 김동욱(경기 용인고 2)군은 무엇이 문제인지 이주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분들 입장에선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지역주민으로서 공동의 활동을 원했던 것이었어요.” 한두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관계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2~3주에 한 번씩 정기 장터를 열기로 결정했다. 장터뿐 아니라 경안천 청소 등 학생들과 이주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른 활동들도 추가하기로 했다. 나군은 “어른들이 하는 일을 옆에서 따라만 했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추진했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직접 주체가 돼 봉사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의무감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었단 설명이다.

‘늘해랑’ 회원들의 이번 행사는 12일부터 2주간 진행된 ‘2010 세계청소년자원봉사의 날’ 행사의 일환이다. 전세계적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 우리나라에선 199개 동아리·소모임·개인이 참여했다. ‘다문화’를 주제로 한글교육·통역봉사·캠페인 등 청소년들의 특기를 살린 활동들이 이어졌다. 과거와 달리 청소년들이 주체가 돼 지역 봉사활동을 이끈 경우가 많았다. 한국청소년진흥센터 오재법 봉사지원팀장은 “청소년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지면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청소년과 지역기관 사이 네크워크가 형성되고 지역사회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사진설명]최형록조재현군과 인도네시아 이주민 완도시(32)·박건우(사진 왼쪽부터)군이 함께 용인이주민센터 벽화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 사진=김진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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