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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오규원' 염소와 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봄눈이 오고 있다 죽은 꽃대 곁에

봄눈이 오고 있다 죽은

꽃대를 우적우적 밟고 가는

검은 염소의 몸뚱이 위에

검은 염소의 몸뚱이 끝에 달린 뿔 위에

봄눈이 오고 있다 하얗게

- 오규원(1941~ ) '염소와 뿔' 중

오규원씨가 문장사(文章社)를 차렸을 때 나는 자주 갔었다. 안경이 헐거워 늘 코 위에 걸쳐 있었다.

선배 시인 시전집 등을 만들다 그는 때려치우고 서울예대 교수가 됐다. 발길이 뜸해지는 동안 양수리 물가에 산다고 들었다.

강물.길.골목.들찔레.두릅나무, 화가 김병종씨가 잘 그리는 딱새.염소 등 그의 풍경도 식구가 늘어갔다.

도시에 내리는 봄눈은 하얗지 않다. 흙눈이다. 물가에 내려야만 하얗다. 볼쌍한 염소도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다.

콩자반 같은 염소똥 위에 내리는 봄눈은 푸근하다. 흑백 판화가 따로 없다. "염소는 힘이 세다" 고 소설가 김승옥씨가 말했다. 아프지 말라고 봄눈이 그를 위로하듯.

김영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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