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의 수다방] 도마오른 '40대 내 남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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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10대와 20대가 다르고, 20대와 30대가 다르지만 40대에 들어선 남편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누군가는 나이 40을 불혹(不惑), 즉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도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나이 40은 가장 흔들리는 시기일 뿐.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직장에서의 위치도 그다지 보장된 게 없다. 집안에도 아버지의 자리는 없다. 여자들의 40대는 많이 논의돼 왔지만 남자들의 40대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별로 없다.

과로사나 가장 높은 자살률이 40대의 특징인가? 40줄에 들어선 남편을 둔 '아줌마' 다섯명이 한자리에 모여 달라진 남편에 대한 얘기를 풀어놨다.

▶문 : 남편이 요즘 들어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한다. 책상과 책꽂이를 사들여 서재를 꾸미고, 운동기구를 들여 놨다.

▶임 : 나이 40이 되면서 남편이 가정적으로 변했다.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집안 일에도 신경을 써준다. 아내에 대한 배려도 많아졌다. 얼마 전엔 오후 7시50분쯤 돼서 전화를 해서는 "나 지금 가도 밥 주냐□" 고 묻는 게 아닌가. 원래 8시 넘으면 밥 먹고 오기가 원칙이라 그런 거지만 그 말에 새삼 가슴이 저며왔다. 나름대로 남편을 받들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김 : 40이 되면 아내의 눈치를 본다는 말도 있지 않나. 우리 남편도 젊었을 때처럼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서로 기분을 상하지 않으려 하니까 별로 싸울 일도 없어졌다.

▶문 :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 오후 7시면 들어 온다. 술을 먹어도 2차는 안간다. 체력이 달리니까. 지위가 높아지다 보니 부하 직원들이 같이 술 먹는 걸 안 좋아한단다. 30대 때 남편은 매일 오전 1~2시에 들어왔었다. 부르는 데도 많고 술 먹을 일도 많았다. 그때는 나 혼자 애들 키우는 것 같아 서러웠는데.

▶조 : 남자들은 40대 들어 자신의 꿈을 완성하고 싶어한다. 우리 남편의 경우 40이 되면서 말수가 줄고 흰머리가 늘었다. 또 밤잠까지 설치면서 뭔가 고민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꿍꿍 앓고 있는 거였다. 결국 내가 사업을 하고 남편이 도와주기로 했다.

▶문 : 회사원들은 진급이 안돼도, 너무 빨라도 고민이다. 남편은 39세에 벌써 부장을 달았을 정도로 진급이 빨랐다. 지금은 회사에서 나오게 되면 뭘 할까 고민이다.

▶이 : 요즘 남편은 점점 더 악착같아지는 것 같다. 원래 부잣집 막내 아들이라 순하디 순한 사람이었는데 이게 아니다 싶었나 보다. 독한 말도 할 줄 알고, 사람 부리는 것도 달라졌다. 시댁이라면 꼼짝 못했는데 이젠 시어머니보다 아내 말이 우선이다.

▶임 : 40이 되면 남자들은 배수진을 친다. 내가 아는 사람은 정말 잘 나가는 은행 지점장이었는데 아무도 모르게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요즘 남편은 경제적 모험을 절대 하지 않는다. 대신 미래를 위해 뭔가 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김 : 회계사인 남편은 남들보다 일찍 안정된 편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40대 중반을 넘긴 지금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뭔가를 궁리하고 추진할 때는 기운이 넘치더니 요즘은 사회적으로 변동이 쉽지 않은 시기여서인지 뭘 해보려 해도 잘 안된다.

▶조 : 일단 내 사업을 시작하고 나니 주변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부러워하는 것 같더라. 내 아내는 아무것도 안하는데 당신은 뭔가를 한다는 거다.

▶이 : 여자들도 40이면 고민이 많아진다.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커버렸고 남편들은 아내가 일하기를 원한다. 노골적으로 돈 벌어오라고 등떠미는 남편들도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임 : 남편이 40대가 됐다는 첫번째 신호는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는 거다. 보약이라면 펄쩍 뛰던 남편이었는데 요즘은 개소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 나도 요즘엔 남편에게 아침 식사를 꼭 챙겨준다.

▶문 : 언젠가 남편이 턱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평생 일만 하다가 이렇게 덜컥 아프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자기가 좋아하는 건 아무 것도 못하고 회사에만 매여 있는 남편이 불쌍해졌다.

▶김 :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정신적인 지원이 더 중요하다. 나는 어떤 일이든 남편의 편이 돼주려고 노력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만큼은 최고의 남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런 마음을 이해해 준다면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 같다.

정리=유지상.박혜민 기자

◇ 모인 사람=김혜영(41.45세 회계사의 아내).문경(35.40세 대기업 부장의 아내).이경희(38.42세 사업가의 아내).임행옥(41.41세 은행원의 아내).조전순(38.42세 교사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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