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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욱 칼럼] 특검제-그 환상과 실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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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연휴도 끝났으니 이용호 로비-비호의혹이 국민의 눈과 귀를 또 다시 상당기간 어지럽힐 것 같다.

전에 없이 여야는 재빨리 이 사건에 관한 특검제 도입원칙에 합의했다. 결국 의혹이 제대로 풀리든 안풀리든 특별검사의 수사를 거치고야 이 사건은 국민의 시야에서 사라져 갈 모양이다.

특검제 도입은 정권, 특히 검찰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다. 권력 실세들이 로비 의혹을 받는 데다 수사를 중단시킨 검찰간부들의 비호와 검찰총장의 동생까지 보호막으로 등장했으니 검찰 수사가 불신을 받는 건 불가피하다.

*** 공정 수사위한 자극제役

그렇다고 특검제만 도입되면 수사의 불공정 시비를 잠재우고 성역을 깨뜨릴 수 있을까. 특검제로 가면 수사의 공정성.독립성은 상당히 확보되겠지만 그 수사가 의혹을 해소시킬 만큼 실효적이냐는 별개문제다.

상대적으로 소외됐다고 느낄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마음속으로부터의 협조를 받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소수의 특검 수사팀이 방대한 검찰조직의 수사 효율성과 전문성을 능가하기는 불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1978년 제정된 특별검사법은 몇번의 시한연장을 거쳐 92년에 폐지됐다가 94년 5년 시한으로 되살아 났었다.

특별검사법이 시행된 19년간 20명의 특별검사가 1억4천8백50만달러의 예산을 쓰고도 4건만 일부 기소를 했을 뿐 나머지 13건은 무혐의 처리로 끝났다.

빌 클린턴 전대통령의 성추문 수사과정에서 특검제의 정치성과 시간.비용낭비 등의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재작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사건과 옷 로비 의혹에 대한 우리의 특검제 도입 경험도 수사의 실효성이란 측면에선 긍정적 평가가 어렵다.

물론 그때는 수사기간 및 범위에 너무 제한을 가하고 공소권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특검제에 대한 일반의 환상을 상당히 깨뜨린 게 사실이다.

역시 특검제는 실제 발동하기보다는 검찰의 성역 없는 독립.공정한 수사를 촉진하는 자극제로서의 역할이 더 큰 것 같다. 검찰이 제 기능을 발휘한다면 특검제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76년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 총리의 구속까지 간 '록히드' 사건 수사를 담당한 것은 다름아닌 도쿄(東京)지검 특수부였다.

그후에도 일본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러니 일본에는 특검제가 없을 뿐더러 특검제 도입 얘기가 나오지도 않는다.

권력 주변과 검찰 내부에 대한 수사에서 검찰이 불신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선 특별검사법 제정이 한시적으로나마 필요한 측면이 있다.

검찰의 성역 없는 독립.공정 수사를 위한 자극제로 기능하기위해서다. 그러자면 특별검사가 특정 사안과 관련된 모든 수사를 할 수 있도록 수사기간과 범위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고 그 사건에 대한 공소유지권도 부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특별검사법을 제정은 하되 실제 활용은 가급적 억제하는 게 좋다. 전쟁 억지를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되 사용은 하지 않듯이 특별검사법도 사용하지 않고 보유하는 것만으로 효과를 거두는 게 바람직하다.

*** 법 제정하되 활용 삼가야

같은 논리로 여야가 '이용호 게이트' 에 대한 특검제 도입원칙에 합의했지만 서두르지는 말았으면 한다. 검찰이 특별감찰본부까지 만들어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하니 좀더 두고보는 것이 좋겠다.

검찰이 이 눈치 저눈치를 보고 성역을 남겨둬서 그렇지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그 막강한 조직과 수사력을 어찌 특검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6공시절 '수서사건' 수사에서 주변만 건드리고 말았던 검찰이 그 다음 정권에선 당시 대통령의 거액 수수를 어렵지 않게 밝혀냈다.

문민정부 말년에는 대검중앙수사부의 소신 있는 수사로 대통령 아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제대로 안해서 그렇지 현 정권 아래서라고 검찰의 수사능력이 그때만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검찰은 이번 사건의 엄정한 수사에 국민의 마음 속에서 검찰이 죽느냐, 사느냐가 걸려 있음을 직시하기 바란다. 지금 검찰의 위상과 신뢰는 추락할 대로 추락해 시정의 농담거리가 돼버렸다.

이는 검찰의 불행일 뿐 아니라 국가의 위기다. 특검제로 갈 이유가 없도록, 설혹 특검으로 가더라도 더 밝혀질 것이 없을 만큼 검찰의 생사를 건 성역 없는 수사와 분발을 기대한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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