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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특집 김장] 젓갈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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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나 파·마늘은 가까운 시장에서 사더라도 젓갈은 산지에서 사야 제맛.

그렇다고 젓갈만 사러 멀리 해안 포구까지 찾아가기는 좀 멋쩍다. 이왕에 떠난 길에 산천경개 구경도 하고 젓갈도 장만한다면 일석이조. 김장이란 대사를 앞두고 스트레스를 푸는 기회도 된다.

맛깔스러운 젓갈과 풍성한 볼거리가 있는 곳, week&은 곰소 포구를 품은 부안 변산반도를 골랐다.


곰소 포구 옆 소금밭에 저녁 하늘이 잠긴다. 자작해진 물이 받아내는 벌겋고 누런 구름이 솜씨 좋게 무친 젓갈처럼 짭조름해 보인다. 겨울을 맞이할 마음 준비도 얼추 끝나가는 것 같다.

***곰소 포구를 품은 부안 변산반도

해안도로 드라이브

해안을 따라 반도를 에두르는 30번 국도에 오르는 순간 가슴이 탁 트인다. 바람 모퉁이를 출발해 곰소 포구에 이르는 90㎞를 따라 변산해수욕장.적벽강.채석강.격포.궁항.모항이 줄지어 있다. 차에서 내려 달려가고 싶은 곳들이다. 이 중 고사포 해수욕장에서 격포에 이르는 10㎞ 해안도로는 외변산의 절경이다. 30번 국도는 이 구간에서 육지 쪽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해안 쪽으로 새로 드라이브용 길을 냈다.

마을과 넓은 갯벌, 양식장을 배경으로 설핏설핏 드러나는 일반적인 서.남해안의 바다 풍경과 달리 도로에서 곧바로 해안을 향해 떨어지는 절벽은 아무래도 동해안을 닮았다. 격포 쪽으로 다가갈수록 수만 층의 판상절리가 엮어내는 진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적벽강을 중심으로 사구식물.몽돌해안.해양생태 등 세 곳의 자연관찰지가 조성돼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는 생태학습지로도 그만이다.

해안도로 끝에 위치한 채석강은 명실상부한 변산반도 대표 경승지. 최근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유흥시설들이 자연미를 갉아먹고 있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이 도로에 외변산 묘미의 80%가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들머리에서 국립공원 입장료 1600원을 내야 하는 것이 흠. 하지만 여기서 받은 티켓은 내변산이나 내소사 등 국립공원 매표소에서도 써먹을 수 있으니 그리 아깝지 않다.

직소폭포 트레킹

노력에 비해 얻는 게 많은 코스. 첫발은 사자동 내변산매표소에서 뗀다. 매표소에서 직소폭포까지 2.2㎞ 구간은 산행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평탄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구두를 신고도 부담없는 길이다. 40분 남짓 백천계곡을 따라 돌길을 밟아가면 갑자기 30m 높이로 솟아오른 직소폭포가 위용을 드러낸다. 그 드센 물을 받아내기에 용소 하나로 벅찼던지 아래로 옥류담.선녀탕 등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산세와 절벽.계곡의 3대 조건을 모두 갖춘 당당한 폭포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이라면 이쯤에서 발길을 돌려도 큰 아쉬움은 없다. 시간 여유가 있고 차량을 내소사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관음봉과 세봉을 거쳐 내소사로 넘어오는 산행길을 추천한다. 내리막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반대편 코스는 젓갈 사러 온 길에 오르긴 무리다. 산행길 끝이 천년 고찰 내소사. 조선 중기 중건 당시 못 하나 쓰지 않고 지은 대웅전의 건축미가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대웅전 건물보다는 연꽃무늬 창살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최근 요사채 보수공사를 시작해 운치가 덜하지만 대신 천왕문에서 일주문까지의 단풍나무.전나무 길이 만추의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이만하면 준비운동은 충분히 한 셈, 본격적으로 젓갈 시장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곰소 포구

칠산바다의 넘치는 고기를 다 팔지 못해 곰소염전 소금밭에 묻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 곰소 젓갈이다. 몰려드는 토사에 수심이 얕아지며 포구의 명성은 한물 갔지만 젓갈시장은 그대로 남았다. 젓갈을 만드는 공장이 18군데, 판매업소가 60곳이다.

김장용 젓갈은 멸치나 까나리 액젓(드물게는 갈치 속 액젓)을 쓴다. 잡아올린 고기를 씻은 뒤 소금에 절여 2년간 숙성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늘과 뼈 등 찌꺼기는 아래로 가라앉고 기름기는 위로 뜨는데 중간에 밸브를 달아 말간 액만 받아낸다. 불빛에 비추면 침전물이 없이 투명해야 제대로 된 제품이다.

수입품과 국산을 제대로 골라내는 것은 쉽지 않다. 국산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데 비해 수입품은 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뚜렷한 차이가 없다. 요즘엔 특히 염도를 낮추는 것이 기술의 핵심. 짜지 않으면서 부패하지 않고 맛을 유지해야 좋은 젓갈이다. 김장 담그는 양이 줄면서 요즘엔 4.5ℓ 용기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멸치 액젓은 8000원, 까나리 액젓은 1만원선. 액젓과 함께 쓰는 새우젓은 다른 곳에선 육젓을 쓰기도 하지만 곰소에서는 가을에 잡힌 추젓이 주력이다. 1㎏에 5000~1만원.

흥정을 마쳤다면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서해안 일몰을 감상하는 것. 상록해수욕장 부근 학생해양수련원 안쪽이 최고의 일몰 포인트다. 바로 앞 솔섬을 배경으로 붉은 햇덩어리가 둥둥 북소리를 울리듯 바다로 떨어지는 광경은 서해일미(西海一美)다. 시간이 없다면 곰소염전에 비치는 붉은 하늘도 좋고, 상가 옆 포구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곰소만의 석양도 처지지 않는다. 붉은 저녁 놀만큼이나 올 겨울 살림도 화사했으면.

부안=최현철 기자<chdc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서해안은 젓갈 보물창고

젓갈은 서해안을 중심으로 발달한 음식. 대형 시장도 서해안을 따라 형성돼 있다. 이중 인천 소래포구, 충남 강경과 광천, 부안의 곰소가 4대 젓갈시장으로 꼽힌다. 새우를 비롯한 젓갈 재료들은 전국의 항구에서 이곳으로 집중된다.

강경=국내 유통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젓갈시장. 시와 상인들이 나서 강경산 젓갈을 '맛깔젓'이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까지 했다. 저온 저장시설이 발달해 젓갈의 염도가 낮은(20% 수준) 것이 자랑. 덤이 후하기로도 유명하다. 새우젓(추젓)이 1㎏에 5000원, 액젓은 10㎏에 2만5000원선. 옛 부둣가인 태평동 재래시장 부근에 90여곳의 대형 젓갈상점이 모여 있다.

광천=토굴에서 숙성한 새우젓으로 유명한 곳. 연중 14도를 유지하는 토굴이 최적의 천연 저장고 역할을 한다. 광천시장 배후의 독배마을에 이런 토굴이 30여곳이나 있다. 특히 살이 통통하게 오른 육젓을 많이 취급하지만 가을 김장철에는 역시 추젓을 많이 찾는다. 육젓보다 약간 싼 오젓도 만만치 않게 팔린다. 추젓 1㎏에 1만원, 액젓 10㎏에 2만원선. 광천역 앞 시장에 젓갈 점포 50여곳이 몰려 있고 보령에서 홍성으로 이어지는 국도에도 소매점이 많다.

소래=수도권 최고의 젓갈시장. 꽃게와 새우, 싱싱한 횟감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늦가을엔 젓갈을 사려는 주부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목포와 백령도 등지에서 들어온 젓갈 재료를 안양과 부평의 대형 동굴에서 서너달 숙성시켜 소비자들에게 내놓는다. 소래의 특산물은 생새우. 다른 곳과 달리 갓 잡은 산 새우를 취급하는데, 다른 양념과 함께 버무려 넣으면 구수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살아난다. 추젓 1㎏에 5000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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