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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with] 김필숙·오종현 모녀의 상하이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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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고3'. 이 꼬리표는 공부 이외 모든 것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각종 가족 모임에 자연스럽게 빠지고, 나이에 걸맞은 문화생활도 누릴 수 없다. 비록 먹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요구하면 되지만, 학교-학원-집으로 이어지는 쳇바퀴 생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고3'은 불가능과 부자유의 다른 말이다. '수시 합격생'이 되는 순간 '고3'은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자유의 바다에 빠진다. 예컨대 수능 D-5일에 중국 여행을 떠나는 일!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고달픈 '대한민국 고3 엄마'에게 효도 한번 해드리고 싶다는 절실한 사연이 통했을까. 중앙일보 week& 독자 체험을 통해 엄마와 나, 단 둘이 2박3일 중국 상하이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굴러들어 왔다.

*** 비빔밥 도시

가슴 설레며 고대하던 12일 밤. 우리 모녀를 실은 중국동방항공 여객기는 2시간도 안 돼 상하이 푸둥공항에 도착했다. 승무원들의 유니폼에서도 이미 중국 분위기를 느꼈던 터. 거리를 달려 호텔에 체크인하기까지 눈앞에 펼쳐지는 이국 풍경에 가벼운 흥분까지 일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난징로.외탄.푸둥.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예원.신천지 순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호텔을 떠난 지 반나절도 안 돼 큰 비를 만났다. 비를 피해 지하도로 내려가다 그만 "와당탕" 슬라이딩. 내 보물 1호 디지털 카메라도 따라 구르면서 고장이 났다. 외탄 지역의 갖가지 서양식 건축물도, 황포강 유람선도 카메라에 담을 수 없게 됐다. 그래도 가슴에 담아두면 되지 뭐.

외탄은 난징조약 이후 국제 조계지로 지정되면서 서양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푸둥 지역은 다국적 기업들이 엄청나게 진출했다고 한다.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세계 경제 속의 경쟁국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가는 좁은 길은 아직 60년대 티를 벗지 못했다.

바다인지 강인지 모를 양쯔강을 끼고 있는 인구 1000만이 넘는 상하이는 그래서 '물 반, 사람 반'이다. 현재와 과거, 부자와 가난한 사람, 빌딩과 판잣집,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런 것들이 비빔밥처럼 섞여 있다는 느낌이다.

*** 짝퉁 시장

중국은 '카피(Copy)'의 천국이라나. 소위 '짝퉁'도 등급에 따라 명품 대접을 받는다지. 그렇다면 짝퉁 쇼핑을 나서볼까. 물어물어 양양복식예품시장을 찾았다. 우리 나라 남대문시장 분위기다. 온갖 명품의 짝퉁들이 쇼윈도에, 길거리 좌판에 버젓이 뽐내고 있다. 이젠 중국에서 짝퉁에도 특허권을 부여한다니, 이 짝퉁시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윈도 쇼핑을 접고 나도 유명 메이커의 모자를 하나 구입했다.우리 돈으로 3500원쯤이다. 물론 실전 중국어 '타이구이'를 거듭한 결과다. 진품과 비교하면 10분의 1 가격이다. 친구들은 몰라보겠지?

어쩐지 실없는 짓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잖아도 우리 나라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범람하는데. 옷은 물론 농산물까지도 중국제 일색인데 중국산 짝퉁을 사다니, 내가 잘못한 건가.

*** 예원과 옥불사

예원은 4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 강남의 고전적인 정원이란다. 오솔길처럼 좁고 구불구불한 회랑과 다리를 따라 명.청시대 양식의 40여개 정자와 누각, 연못과 가짜 산을 구경할 수 있게 돼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산과 호수 등을 담장 안에 가둔 느낌이다. 우리나라 비원이 자연 안에 정자와 흙길을 만든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의 정원이 인간세상 속에 자연을 가뒀다면 우리는 인간세상이 자연에 깃들었다고나 할까.

옥불사는 도심 속의 절이다. 우리나라 절은 대부분 산속에 있는데…. 입장료는 키가 120cm를 넘으면 10위안, 아니면 무료다. 옥불을 보려면 따로 5위안을 더 내야 한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스님들이 분주하게 불사를 준비하고 있어 구경거리가 늘었다. 사람들은 향을 사르며 연방 무엇인가 기원한다. 나도 기원했다. 무엇인지는 비밀.

*** 실전 중국어

요즘 중국어 열풍이 강렬하다. 너도 나도 중국어를 배운다. 내 주위만 봐도 친구 여럿이 이미 중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났다. 대학도 중국어과를 택하겠다는 친구가 많다. 이미 수시모집에 합격한 친구들은 중국어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나야 중국어를 잘 모르지만 한자는 좀 알지 않는가. 자, 상하이에서 실전 중국어를 익히는 거다. 아는 말이야 감사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비싸다 정도지만 그만하면 생존 중국어는 되지 않을까.

우선 호텔 벨보이에게 써본다.'셰셰(감사합니다).'놀란 눈으로 '부커치(웬걸요, 괜찮아요)'란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영어로 '유아 웰컴(You're welcome)'이란 뜻이겠지. 비좁은 거리에서 행인에 길을 비키며 '투이부치(미안합니다)'라고 한다. 이 사람은 대꾸없이 그냥 간다.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고르며 '타이구이(매우 비싸다)'를 연발한다. 점원은 뭐라고 떠드는데, 아마 품질에 비해 비싸지 않다거나 싸게 해 줄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여행을 마치며

2박3일은 짧았다. 게다가 비까지 만나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으로 중국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공산주의란 이념 때문에 은연중 가지고 있던 어둡고, 음습하고, 칙칙한 느낌이 약간 사라졌다. 비록 해외 열강에 침탈당하긴 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능동적으로 발전하는 것 같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를 추구한 결과일까. 어차피 함께 가는 경쟁국이라면, 정부도 기업도 그에 알맞게 대처해야 할 텐데. 잘 하겠지. 대입 수시모집을 준비할 때만 해도 국제학부에 지원하기 위해 중국에 대해 제법 공부했는데, 직접 와 보니 세상에 대한 견문이 더욱 넓어진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싶다. 그때 상하이를 다시 방문할 때는 비가 오지 않아야 할 텐데.

◆ 상하이는 중국의 현재,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는 도시다. 국제적인 도시인 만큼 여행하기에 큰 불편은 없다. 첫 여행이라면 택시 이용을 추천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여행객은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볼 만하다. 거리나 업소에서 만나는 중국인들의 영어 실력은 생각보다 얕다. 간단한 중국어 회화책 한 권은 필수.물건을 구입할 때는 상인들이 여행객에겐 무조건 가격을 두 배 이상 올려 부른다는 걸 명심하자. 바쁜 직장인을 위한 주말여행 상품으로 상하이몽(夢)이 있다

문의-블루여행사(http://www.bluetravel.co.kr, 02-514-0585), 동방항공(http://www.easternair.co.kr, 02-5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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