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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30년 동고동락 새박사 됐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전남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 심규흥(47)씨 집 마당에 들어서면 새들이 먼저 객(客)을 맞는다. 왕관앵무.금정조.카나리아.염주비둘기.소문조 등 관상조류 1백여마리가 맑고 고운 목소리를 뽐낸다.

그는 건축 현장을 오가며 생계를 유지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러나 30여년간 새들과 함께 살아와 '새박사' '민간 조류전문가' 로 통한다.

경남 창녕이 고향인 沈씨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공기 맑고 새를 키우는 데 적합한 환경을 찾아 2년 전 처가가 있는 진도에 정착했다. 평생의 꿈인 전국 최초의 조류학습장을 개설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에선 국내 서식 조류를 조사하는 '텃새' 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새와 함께 하는 그의 인생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됐다.

"고향 동산과 들판에서 지저귀는 온갖 새소리에 빠져들다 보니 학교 수업을 빼먹기도 했지요. 새를 찾아 산과 계곡을 헤매는 일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

그는 붉은배 새매.때까치 등을 대나무집에 넣고 개구리.메뚜기 등을 먹이로 주며 정성스럽게 키우다 날려 보내곤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금계.카나리아 등 2백쌍을 사육하고 텃새와 철새를 찾아 녹음기를 들고 며칠씩 산을 뒤지기도 했다.

沈씨는 희귀조의 서식지와 조류 분포지 등을 훤하게 꿰고 있다. 지난해에는 모 방송국에서 교수.전문가 등을 동원해 제주도 휘파람새의 둥지를 찾다가 실패하자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왔다.

그는 이틀 만에 거제도에서 둥지 다섯곳을 찾아냈고 진도에서도 팔색조 둥지 두곳을 발견해 방송 다큐멘터리물을 통해 일반에 알리는 데 도움을 줬다.

그는 야생 조류의 개체수가 점차 줄어드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적 하루에 5백마리 이상 봤던 흰빰맵새와 밀화부리는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 고 말했다.

"새들이 살 곳이 없으면 그만큼 인간이 갈 곳도 줄어듭니다. 야생 조류의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사육방법 연구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

진도=구두훈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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