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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야 놀자] 드라이버, 뭘로 바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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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 때리는 맛 때문에 골프 치지요.”

어느 드라이버가 금도끼일까. 골프 전문 방송인 정아름씨가 2010년 신제품 드라이버를 살펴보고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 5일 끝난 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만난 박지은은 호쾌하게 드라이브샷을 날렸다. 잘 맞으면 300야드가 넘어가기도 했다. 원래 장타자였던 박지은이지만 전성기 때보다 더욱 화끈하게 공을 때렸다. KIA 클래식에선 거구의 수잔 페테르센과 함께 경기했는데 거리가 비슷했다. 박지은은 LPGA 투어에서 이렇게 과감하게 드라이브샷을 날린 적이 없다고 했다.

“대학 때는 다이내믹하게 스윙을 했지만 투어 데뷔할 즈음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스윙을 살살 했죠. 2004년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할 때도 사실은 쇼트게임과 퍼팅 덕분에 우승한 거였어요.” 살살 하는 스윙은 정확하지도 못하다. 그의 성적은 차츰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시즌엔 골반 수술을 받았다. 대회에 나오지 못했다.

“집에서 TV로 LPGA 중계를 보면서 느꼈지요. 내가 가진 장타가 얼마나 소중했는지요. 그래서 옛날식으로 공을 ‘패기로’ 했지요. 기분도 좋고 공도 똑바로 나가기 시작하더군요.” 그에게 드라이버는 자신감이었다. 박지은은 허리가 아프지 않으면 옛날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드라이버는 쇼, 퍼터는 돈이라고 하지만 프로 선수들도 드라이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박지은은 “퍼터도 중요하지만 일단 드라이버가 많이 안 나가면 세컨드 샷에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데 자존심도 그렇고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박지은은 핑 G15 드라이버를 쓰고 있다. “이전에 쓰던 클럽 대신 어릴 때부터 쓰던 핑 드라이버를 쓰니 예전처럼 공을 시원하게 때리던 느낌이 와서 좋다”고 했다.

요즘 각 투어는 거리를 늘리는 추세다. PGA 투어에서 전장이 7500야드가 넘는 대회는 흔하다. 25일 제주에서 끝난 유러피언 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의 전장은 7345야드였다. 그런데도 남자 프로들은 “전장이 짧은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LPGA 투어에서 뛰는 이지영은 “여자대회도 전장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7000야드 코스에서 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장타자인 그는 “거리가 늘어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최경주도 “거리를 약 20야드 정도 늘렸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 “허리 통증이 사라졌고 드라이버도 바꿨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늘어난 거리에서 드라이버의 몫은 얼마나 될까. 최경주는 “용품마다 차이가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몸이 받쳐준 상태에서 제대로 된 스윙을 했을 때 장점이 나타나는 것이지 용품만 좋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아마추어들에게도 드라이브샷은 중요하다. 멋진 드라이브샷 한 방 때리는 맛으로 필드에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의 드라이버 사랑은 대단하다. 젝시오를 만드는 던롭의 김세훈 마케팅 팀장은 “한국은 전 세계에서 신제품이 가장 먼저 나오고, 사용자의 피드백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시장이다. 다시 말해 드라이버 전쟁의 최전선이 한국”이라고 말했다.

핑의 강상범 마케팅 팀장은 “드라이버는 가장 비싼 만큼 최첨단 기술이 들어간다. 교체 주기는 아이언이 3년인 데 비해 드라이버는 1년”이라고 말했다.

1990년 캘러웨이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쓰던 대형 대포인 ‘빅버사’ 이름을 딴 드라이버를 들고 나왔다. 헤드 체적 245cc로 당시로선 대형 헤드를 장착한 드라이버였다. 이후 용품 업체들은 열강들이 군비경쟁을 하듯 경쟁적으로 헤드를 대형화했다. 이 경쟁은 460cc에서 멈췄다. 골프 용품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는 R&A와 USGA(미국골프협회)가 헤드 용적을 460cc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후 업체들은 관성 모멘트, 반발력 등이 증가한 새 제품을 내놨다. 이제는 그것도 한계점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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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은 이제 샤프트와 골퍼의 마음으로 넘어간다. 샤프트는 클럽의 엔진, 클럽의 척추로 불릴 정도로 중요하다. 이제 일반 골퍼도 그 사실을 안다. 업체들은 투어 프로들이 쓰는 후지쿠라나 MFS(매트릭스) 오직 같은 샤프트를 장착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타이틀리스트는 56가지나 되는 샤프트 옵션이 있다. 디자이너 드라이버 매출은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드라이버 길이가 길어진 것도 올해 두드러진 특징이다. 업체들마다 경쟁적으로 샤프트 길이를 늘렸기 때문이다. 테일러메이드의 드라이버인 ‘버너 수퍼 패스트’의 샤프트는 46.25인치에 달한다. 던롭의 신젝시오는 46인치가 됐다. 핑 G15, 렙처 나이키 SQ 막스피드, PRGR 레드 505의 샤프트 길이는 45.75인치다.

골프용품 업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샤프트가 길면 컨트롤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 많은 업체들은 긴 샤프트가 장착된 드라이버를 내놓으면서 “문제 없다”고 말을 바꿨다. 업체들은 “제대로 맞혀야 공이 똑바로 멀리 가는데 기술 발달로 인해 헤드 페이스의 스위트스폿이 넓어졌기 때문에 샤프트가 길어도 원하는 비거리와 방향성을 추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국내 골프장은 페어웨이 폭이 작고, 특히 아웃오브바운스(OB)가 많아 정확하지 않은 샷은 커다란 손해”라고 했다. 프로 선수들도 45인치를 넘는 드라이버를 잡는 선수는 별로 없다. 앤서니 김은 클럽을 일부러 짧게 잡는다.

그래도 샤프트가 길어지는 것은 올해 드라이버의 대세다. 용품 업체가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많은 제품을 팔려는 의도가 가장 크다. 그러나 새 제품을 팔기 위해 그만큼 연구도 한 것 같다. 김세훈 던롭 마케팅 팀장은 “테크놀로지를 인간의 마음과 감성으로 확장했다”면서 감성 마케팅을 얘기했다.

감성 마케팅에 의하면 긴 샤프트를 가지고도 짧은 드라이버를 잡았을 때처럼 안정감을 느끼게 클럽을 만든다. 던롭과 투어스테이지는 어드레스에서 안정감을 주기 위해 샤프트가 시각적으로 짧게 보이는 디자인을 고안해 냈다. 짧아 보이도록 가로 줄무니를 그린 샤프트를 끼어 넣은 업체도 있다. 시각적인 눈속임일 수도 있지만 골프 스윙에서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일리가 있는 얘기다. 타구음이 공의 비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골퍼들이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나는 드라이버를 선호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물론 긴 샤프트를 만들면서 기술적으로도 보완을 했다. 업체들은 2010년형 드라이버는 “공기역학적 디자인에 샤프트와 헤드 무게를 줄여 편안하게 휘두를 수 있다”고 말했다.

클럽 헤드는 날렵해졌다. 둔탁한 드라이버를 만들던 핑은 헤드 뒤편을 세련되게 깎았다. 젝시오와 캘러웨이도 다운스윙 때 공기 저항이 적도록 에어로 다이내믹 기술을 적용한 헤드를 장착했다. 세련된 디자인이 구매 욕구를 더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글=성호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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