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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셔츠 색깔에 담긴 태국 정치 기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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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근래 태국에는 색깔로 정치색 가르기가 유행처럼 돼버렸다.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은 노란색이다. 2006년 12월 5일 푸미폰 국왕 탄신 80주년이 되는 때였다. 당시 태국 내무부는 국왕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표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노란색 옷을 입도록 권장했다. 노란색은 푸미폰 국왕이 태어난 요일의 상징색이다.

태국은 각 요일마다 상징색을 갖고 있다. 일요일은 붉은색, 월요일 노란색, 화요일 분홍색, 수요일 초록색, 목요일 오렌지색, 금요일 하늘색, 토요일은 보라색이다. 각기 다른 색깔에는 신화적 의미를 덧붙인다. 예를 들어 일요일 붉은색의 의미는 시바(Shiva)신이 사자 6마리를 가루로 만들어 붉은 천으로 싼 뒤 영생의 물을 뿌리니 붉은색 태양이 태어났다는 식이다.

노란색이 정치적인 색깔로 바뀐 시기는 2006년 초. PAD가 본격적으로 탁신 총리 퇴진 운동을 벌였던 시기다. 붉은색은 2008년 말 아피싯 총리 정부 발족 후 이에 반발해 친탁신 독재 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이 정권 퇴진을 요구하면서부터 중요한 정치적 색깔이 됐다.

붉은색·노란색과 함께 의미 있는 정치 색깔은 분홍(핑크)색과 다채색(멀티컬러)이다. 분홍색은 태국 국민들이 존경하는 라마 5세 쭐랄롱꼰 대왕이 탄생한 화요일의 색이다. 2007년 푸미폰 국왕이 씨리랏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할 때 분홍색 재킷을 입었다. 지금 태국에는 국왕을 존경하는 색깔 패션의 트렌드가 노란색에서 분홍색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다채색을 입은 사람들은 어떤 한 가지 색을 고집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분홍색도 섞여 있고 노란색도 섞여 있다. 이들은 붉은 셔츠의 시위가 장기화되자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로 친정부적 색채를 띤다. 이 외에도 파란색, 초록색, 검정색, 흰색 등의 색깔도 있지만 정치적 의미가 퇴색했거나 수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다양한 색깔의 정치세력들이 참여하는 총천연색 파노라마 같은 태국 정치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어지럼증이 날 정도다. 하지만 붉은 셔츠와 붉은색이 아닌 셔츠의 대결로 압축된다. 앞으로의 태국 정국을 이해하려면 붉은 셔츠와 노란 셔츠가 자신들의 색깔을 고집할지, 다채색 세력들과 합세하게 될지를 주시하는 게 주요 관전 포인트다.

김홍구 부산외대 교수·태국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