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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나토가입 제안… 테러가 신세계질서 그린 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이번 미국의 테러사건을 계기로 국제질서가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행보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간 나토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한마디로 '동진(東進) 저지' 였다. 러시아는 냉전체제 해체 이후 나토가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하는데 대해 불만과 불안을 느껴왔다.

그러나 1999년 폴란드.체코.헝가리 등이 나토에 가입한데 이어 이제는 옛 소련의 공화국이던 발트해 3국의 나토 가입마저 기정사실이 돼가고 있다. 이런 마당에 계속 '나토동진 반대' 만을 외쳐봐야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한 러시아가 입장을 선회, 아예 나토에 가입하겠다는 적극적 자세로 나온 것이다.

특히 러시아로서는 이번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적극 협력하는 대가로 자신의 숙원을 해결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가 나토 가입 의사를 내비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6월 슬로베니아 미.러 정상회담 직후 "미국은 러시아를 나토에 가입토록 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7월 기자회견에서도 "나토를 해체하든지, 러시아의 가입을 허용하든지 양자택일을 하라" 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근 러시아의 유럽 맹방으로 부상한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지난 8월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며 화답했다. 슈뢰더 총리는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최근 이에 긍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며 미국도 러시아의 나토 가입에 반대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서방으로서는 러시아가 더 이상 나토의 전략적 경쟁상대가 아닌 데다 최근 들어 여러 분야에서 동맹관계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미사일방어(MD)나 이번 대테러 공동전선 구축 등과 관련, 러시아와의 협력은 더욱 필요하다. 나토로서도 이를 그간 주적(主敵)의 상실로 모호했던 나토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이렇게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러시아의 나토 가입은 이제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러시아의 나토 가입이 완결되면 냉전체제 붕괴 후 재편되기 시작한 국제질서는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미국-유럽-러시아의 이른바 '기독교 삼각동맹' 이 완성되고 미국은 주적인 중국과 이번 테러사태로 위협세력임이 분명해진 이슬람권을 완전 포위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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